요즘 나이 불문하고 ‘정말’ ‘너무’ ‘-같아요’를 빼고 말하라 하면 아마도 얘기하기 불가능할 것이다. 글 쓸 때 ‘-것이다’도 마찬가지다. 일본식 글투라고 하면서 안 된다고 하는데 마땅히 대체할 것이 없다.

‘별들의 고향’으로 유명한 소설가 최인호의 글을 보니 ‘-것이다’가 한 페이지에 7번 나와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짜장면은 이제 써도 되고 짬뽕은 안 된다는 소위 전문가들 글을 보면 솔직히 별로다.

지방선거 유세장에 가보니 유권자를 ‘정말로 존경 한다’느니 ‘너무너무 사랑 한다’는 말이 난무한다. 방송에 젊은이들 인터뷰를 보면 ‘-같아요’ 빼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정상적인 말로는 뜻이 통하지 않는 언어과잉의 시대, 가식과 허위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느낀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를 보면 우리의 언어와 똑같다. 김정은 보고 ‘꼬마 로켓맨’이라고 조롱하더니 ‘김정은은 자기나라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운다.

트럼프가 트위터에 잘 쓰는 부사는 ‘굉장히, 매우, 무한히, 엄청난, 도발적’등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뉴욕 타임스 등 주류 언론에서도 놀랄 만큼 파급력이 막강하다. 어찌 보면 시대의 흐름을 읽고 있는 ‘진짜’ 머리 좋은 사람일는지 모른다.

종편이 등장한 후 패널들의 사투리와 막가파식의 언어가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사투리가 나쁜 게 아니라 적어도 방송에는 억양과 맞춤법 정도는 좀 자제하고 고칠 필요가 있다.

방송에 20년 째 출연하는 동생에게 들어보니 ‘형은 방송을 모르는 소리’라며 ‘2초 안에 채널이 바뀌는데 점잖게 말했다가는 시청률 꽝’이란다.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 언어라고 한다면 ‘정말 너무 한 거 같아요’도 비난할 이유가 없다.

자식에게 아무리 고치라고 말한 들 통하지 않는다. 황야에서 홀로 외치는 소리일 뿐이다. 학교에서 좋은 글을 읽어도 친구들과의 대화가 반 이상이 욕이니 기대난망이다. 불과 반세기 전 서울 토박이 엄마들은 자식이 떠들거나 욕을 하면 ‘왜가리 짖는 소리 하지 말거라’라고 타일렀다.

이제는 타이를 엄마도 없고 맞춤법 찾고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없어졌다. 어려서 지방에서 자란 필자는 서울에 올라와 사투리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끝에다 ‘요’나 ‘니’를 붙이면 서울말이 된다는 조언만 믿고 ‘괜찮아요’나 ‘밥먹었니’를 남발하다 오히려 놀림감이 된 적이 있다. 늘 한복을 입고 계시던 친구 어머니가 나의 고충을 알고 사투리가 나쁜 게 아니라 과장된 말이 나쁘다고 말하였다. 50년도 넘은 지금 그 분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주재원 시절 프랑스에 잠시 살았던 사람이 한 말이다. 평소 다니던 정육점 주인에게 불어로 무슨 말을 했는데 그 주인이 갑자기 닳아진 사전을 피 묻은 손으로 찾더니 이때는 이 단어를 써야 한다고 말하더란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에 자기나라 말을 굳건히 지키면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라는 아멜 선생님의 말이 나온다. 소중한 모국어를 쓰고 있는 것만 해도 황송한데 제대로 쓸 생각은 왜 안 하는지 스스로 자책할 뿐이다.

언어 과잉의 시대다. 실언(失言)과 식언(食言)의 시대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학교 석좌교수, 전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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