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서 대륙 진출에 대한 꿈이 부푼다. 서울에서 평양과 신의주를 거쳐 압록강을 건너면 만주 땅이다. 이들 땅은 옛 고구려인들이 말을 타고 달리던 길이기도 하다. 필자는 방학을 맞아 숭실사이버대학교 풍수지리연구회 학생들과 함께 ‘한민족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심양에서부터 대련까지 답사를 다녀왔다. 우리 역사의 흔적이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중국화 되어 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고구려의 첫 도읍지인 졸본성은 오늘날 랴오닝성(遼寧省) 번시시(本溪市) 환런시(桓仁市) 동북쪽 8km 지점에 위치한다. 환인이란 지명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인·환웅·단군에서 비롯된 듯하다. 현재는 만족 자치시인데 만주족도 따지고 보면 고조선과 고구려 구성원이었다. 환인은 교통의 요지이기는 하나 가는 길은 쉽지가 않다. 첩첩으로 산이 감싸고 있는 가운데에 환인시가 위치한다. 분지 안에는 평탄한 들판과 수량이 풍부한 혼강이 흐른다. 산을 이용하면 방어, 들판을 이용하면 식량, 강을 이용하면 물자교류 등 도읍지로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다.

본래 이 땅은 소서노의 본거지였다. 졸본부여의 유력자인 연타발의 딸인 그녀는 북부여 왕 해부르의 서손인 우태와 혼인하여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 우태가 일찍 죽자 과부가 되어 졸본에서 살고 있었다. 그때 주몽이 부여에서 오이·마리·협부 세 부하와 함께 도망쳐 왔다. 주몽은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하백의 딸 유화 사이에서 잉태되어 알로 태어난 인물이다. 부여의 왕 금와는 유화를 사랑하여 궁에서 살게 했다. 금와 왕에게는 대소 등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재주가 주몽을 따르지 못했다. 금와 왕이 주몽을 총애하자 대소가 주몽을 죽이려고 하자 주몽이 환인으로 도망쳐 온 것이다.

의지할 곳이 없던 주몽은 소서노를 만나 결혼한다. 소서노는 주몽보다 8살이나 많았다. 주몽 입장에서는 소서노의 재력과 기반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소서노는 주몽의 안전을 위해 거주지를 오녀산(820m) 꼭대기로 옮겼다. 동·남·북쪽이 100~200m의 깎아지른 절벽이고, 서쪽으로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의 길이 있었다. 산 정상은 남북길이 1천m, 동서너비 130~300m 정도 되는 평지다. 또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샘물이 나고, 그 물을 모아 만든 길이 12m, 너비 6m, 깊이 2m 되는 천지가 있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곳을 천교혈(天巧穴)이라고 한다. 높이 솟은 산 위에 보국을 형성한 것이 마치 천궁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천교혈의 특징은 산 아래서 보면 높고 험해서 도저히 살 수 없는 땅 같은데, 올라가면 마치 평지처럼 생긴 곳이다. 또 산이 가파르게 보이지 않아야 진혈인데 이곳이 그렇다. 주변 산들은 성곽처럼 있으면서 바람을 막아주고 있어, 산 정상인데도 바람이 아늑하다. 천교혈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물이 있어야 하는데 천지가 있으니 혈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주몽과 소서노는 이곳에서 6칸 정도의 건물을 짓고 살았다. 이를 초기 왕궁 터로 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다. 성문은 3개가 있으며, 이중 동문은 한쪽 벽이 다른 쪽 벽을 에워싸는 옹성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산의 끝자락 점장대에 오르면 환인시와 넓은 평야, 수태극으로 흐르는 혼강이 내려다보인다. 주몽은 이곳에서 세력을 키워 마침내 BC 37년 고구려를 세웠다. 광개토대왕비 비문에는 추모왕(주몽)이 비류수(혼강)의 홀본 서쪽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정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이 고구려의 첫 도읍지로 알려진 이유다.


산성은 세력이 약할 때는 방어하기에 유리하다. 그러나 세력이 커져 공세적일 때는 불리한 지형이다. 그래서 고구려는 평시에는 평지성에 머무르다 전시에는 산성으로 옮겨 싸우는 전략을 세웠다. 이로부터 우리나라 도읍은 평지성과 산성을 함께 갖추는 형태가 되었다. 예컨대 국내성과 환도산성, 평양성과 대성산성, 풍납토성과 남한산성, 한양성과 북한산성 등이 평지성과 산성의 세트를 이루고 있다. 우리민족이 이곳을 다시 차지할 날이 오기를 조용히 빌었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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