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부키│400페이지



올해는 국방부가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한 23종의 도서를 불온도서로 지정한 지 올해로 만 10년이 됐다. 국방부에 따르면 이 책은 반미, 반자본주의를 주장하는 반정부 도서였다. 그러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미국 정부가 취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일 뿐 미국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이 책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일 뿐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지지하는 책은 아니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위험성을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소개한 대중 경제서였다. 당시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근사한 구호 아래 신자유주의가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이런 조류에 역행해 신자유주의 담론을 정면에서 비판했다. 그리고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전에,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계속 유지된다면 대규모 경제 위기, 나아가 제2차 대공황을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10년이 지난 오늘의 상황은 어떠한가? 장하준 교수는 특별판 서문에서 신자유주의는 아직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신자유주의의 희생자로서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단언한다. 다시 말해 세계 경제에서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관계는 10년 전과 유사하게 지속되고 있으며, 한국 사회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관계 역시 더욱 악화되고 있다.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에게 강요했던 일들이 한국 사회 내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안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누구인가? 이 책은 전 세계 독자를 겨냥한 책이므로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관계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여기서 부자 나라를 강자로, 가난한 나라를 약자로 바꾸면, 이는 지금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우리나라는 촛불 이후 1년, 신자유주의의 폐허 위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해야한다.

촛불 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더욱 악화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저 임금을 올리고, 노동 시간을 단축하고, 복지 지출도 늘리려 하고 있다.

중소기업, 벤처 기업 등을 지원하며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 정책으로는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 사회 문제들을 풀기에는 태부족이라고 장하준은 주장한다. 더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산업 정책의 부활과 획기적인 복지국가의 확대를 요구한다. 우선 정부, 기업, 노동자가 머리를 맞대고 과연 앞으로 우리 경제를 이끌어 나아갈 수 있는 산업이 무엇이고, 이를 위해서는 어떤 정부 정책, 기업 전략 등이 필요한지 합의를 형성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촛불 혁명은 더 공정하고, 다 같이 잘 살고, 미래에 희망이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국민의 이런 열망이 더 절실해진 것은 외환 위기 이후 2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불공정하고 잔인한 데다 역동적이지도 못한 나라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이런 열망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지금 문재인 정부가 하는 정책들로는 부족하다. 더 적극적으로 우리 경제, 사회 체제를 바꿔야 한다.

김동성 기자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