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이민 성공 30대 박가영씨가 전하는 조언

▲ '이민을 꿈꾸는 너에게' 저자 박가영 씨

 젊은이들의 삶이 너무 고단해 '헬조선', '탈조선'이라는 말이 수년째 유행하는 가운데, 실제로 한국을 떠나 다른 곳에 성공적으로정착한 젊은이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와 눈길을 끈다.

 20대 중반에 호주로 넘어가 10년째 사는 박가영(35) 씨의 에세이 '이민을 꿈꾸는 너에게'(출판사 미래의창). 그는 현재 호주 멜버른에서 퓨전 한식 레스토랑 '수다'와 '네모' 두 곳을 운영하는 오너 셰프다. 한국에서는 타고난 '금수저'가 아니고서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알바 경력밖에 없는 흙수저에 고작 전문대 출신"이라고자신을 일컫는 저자가 호주에서 이룬 배경은 뭘까.

 궁금증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가 왜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호주에서 맞은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차차 알게 된다.

 저자는 자기 어린 시절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순간부터 어딘가 약간 비뚤어진아이"였다고 돌아본다. 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고 엉뚱한 생각을 하며 다른 아이들과어울려 놀지도 않았다. 그렇게 평범하지 않은 아이가 살아가기에 한국은 척박한 곳이다.

 고교 시절에는 밤늦게 PC방이나 맥도널드 같은 곳에서 알바를 하고 학교에서는 계속 잠만 자거나 책을 읽었다고. 어른들은 그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한심한 애'로 봤다.

 돈을 벌러 뛰어든 '알바' 전선에서는 온갖 굴욕적인 순간을 겪어야 했다. 비디오방에서 일할 때는 성적인 욕구를 해결하러 온 남성들로부터 끊임없이 추근거림을 당했고, 사무 보조로 일할 때는 회식 4차 노래방에서 만취한 차장급 남성으로부터 '업소 아가씨'로 오인당해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다.

 백화점 주차 도우미를 하며 한겨울 추위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던 건 매일 VIP와임원들의 차 번호와 이름, 얼굴을 외우고 시험을 봐야 한 것이다.

 "그 사람들이 버튼 하나를 눌러서 주차권을 발급받는 '엄청난 수고'를 하지 않도록, 그 높으신 신분을 알아보고 신속하게 게이트를 열어줘야" 했다.

 "나는 왜 그들의 이름과 얼굴, 심지어 차종과 번호까지 달달 외워야 하는 걸까.

신분제도로 고통받는 불가촉천민 이야기를 담은, '신도 버린 사람들'이라는 책이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 떠올라서, 나는 일하는 내내 집중을 할 수가 없었어." (23쪽) "어리다는, 여자라는, 알바생이라는, 잘 웃는다는, 거절을 잘 못한다는, 돈이 필요하다는…. 내 특징들이 약점이 되고, 그 약점으로 누군가에게는 나에 대한 권력이 생긴다는 구조가 나는 진저리칠 만큼 싫고 무서웠어. 나는 그런 권력을 준 적이 없는데, 뒤돌아서 마구 도망치고 싶었어. 구체적으로 이민을 생각했다기보다는, 그저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아." (25쪽)

▲ 호주에서 한식 레스토랑 '수다'를 운영하는 박가영 씨.
 

 그런 생각을 품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발을 딛게 됐고, 영주권을 받는 데 필요한 기술로 '요리'를 택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유학생활을 한다. 자격증을 따고호텔 주방에서 일하다 운 좋게 헐값에 나온 식당 점포를 보게 되고 부동산업자의 꾐에 넘어가 계약서에 서명한다. 얼떨결에 시작한 퓨전 한식 레스토랑은 다행히 기대 이상 뜨거운 반응을 얻는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열심히 고민하고 노력해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는 호주에서 '앨리스'란 이름으로 살고 있는데, 이전 자신과 앨리스는 완전히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그만큼 인간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많은 서비스가 공짜이고 빨라서 편한 한국과 모든 것이 비싸고 느려서 불편한 호주를 비교하는 부분은 특히 양국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며 성찰의 여지를 남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더 이상 한국에서 무료 혹은 헐값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편안함이 즐겁지가 않아. (중략) 나는, 그리고 아마 이 책을 읽고 있을 너도 노동을 해서 먹고사는 사람일 거야. 우리끼리 노동을 헐값으로 주고받고 있는 것 같지 않니? 인터넷 수리 기사인 누군가는 금 같은 기술과 시간을 아낌없이 쏟으면서도 그만한대가를 받지 못하고, 집에 와서 짜장면을 시켜먹을 거야. 그럼 또 누군가는 헐값으로 그 짜장면을 만들고 배달을 하겠지. 미용실 견습생인 누군가도 손님들의 머리를 감겨주며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돈을 받고, (중략) 서비스가 돌고 도는데 우리는모두 가난하고, 돈을 버는 건 기업과 자본가라는 사실이 슬퍼." (45쪽)

 이 책은 저자가 자신처럼 이민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해주기위해 편지글 형식으로 쓴 책이다. 호주로 간 이후 정착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내용도 상당 부분 담겼다.

 책 출간은 처음이지만, 그동안 인터넷 '브런치' 사이트에 '멜버른앨리스'라는 필명으로 많은 글을 올려 호주 생활을 공유했다. 책에 담긴 사진은 사진작가 김수빈씨 작품들이다.

 304쪽. 1만4천원.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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