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9년(중종 14) 4월 13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중종(中宗)은 선비들에 의해 천거돼 특별 시험을 치른 김식(金湜) 등 28명을 조정의 관리로 임명했다. 그리고 서대문 밖의 모화관(慕華館)에서 정인(鄭麟) 등 46명을 무인(武人)으로 뽑았다. 이들은 3년에 한번 씩 보는 정식 과거시험 대신 현명하고 뛰어난 인재를 추천, 선발한다는 의미의 ‘현량과(賢良科)’를 통해 선발된 최초의 합격자들이었다.

원래 과거제도는 중국 수(隋)나라에서 비롯된 이후 당(唐) 대에 정착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광종(光宗) 때 중국 후주에서 고려로 귀화한 쌍기(雙冀)라는 사람이 과거 실시를 건의하면서 도입됐다. 이전의 관료 선발은 능력보다는 힘과 재력 있는 가문의 자제들을 선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렇게 선발된 관료들은 당연히 백성들을 위한 정책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 했다. 이에 곳곳에서 불만은 쌓여만 갔고, 백성들은 권력과 돈이 없어도 능력을 통해 관리를 뽑는 제도가 도입되기를 원했다. 광종은 백성들의 이런 마음을 헤아리는 동시에, 귀족 세력의 힘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과거제를 처음으로 도입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과거 시험은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되, 그때보다 훨씬 투명하게 진행하고자 노력했다. 보통 문과(文科)와 무과(武科)로 나눠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시행했고, 영조 대에는 속대전을 완성하면서 자(子), 묘(卯), 오(午), 유(酉)가 드는 해를 식년(式年)으로 정해 과거를 시행하게 했다. 당시의 과거는 사서오경에 대한 이해도를 필기와 구두시험으로 평가하고, 문학 시험인 부(賦)와 중국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작성할 수 있는 문장능력을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당시의 중요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시험을 치렀다.

그런데 권력자들의 자제 대신 능력 있는 인재를 뽑고자 하는 과거시험의 의도와 달리 해가 가면 갈수록 명문거족들의 부정행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거 응시자 중 몰래 책을 가지고 와서 베끼거나, 글 잘 짓는 사람을 버젓이 과거 시험장으로 데리고 와서 이들로 하여금 대리시험을 보게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심지어 시험관을 매수해 남의 답안지를 훔쳐 시험에 합격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이렇게 부정행위를 통해 과거를 통과한 사람들은 당연히 국정운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과거제의 폐단이 나날이 쌓이자 중종 대 개혁세력의 대표적 인물인 조광조는 현인들을 과거 시험이 아닌 추천에 의해 선발할 수 있는 현량과를 도입했던 것이다.

현량과는 중국 한나라 때의 현량방정과(賢良方正科)를 본떠 만든 것으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인재를 천거에 의해 대책(對策) 만을 시험 보고 채용하는 제도이다. 이것은 기존 과거의 틀을 깨는 것으로 당연히 기득권 세력이었던 보수파의 반대도 매우 심했다. 하지만 중종은 기득권층의 반대를 적극적으로 막아내면서 글만 잘 쓰는 사람이 아닌, 국가 개혁을 위한 실천적인 능력을 가진 새로운 인재를 찾았고, 마침내 현량과 설치 제안 3년 만에 김식 등을 선발한 것이다. 하지만 현량과를 통해 들어온 사람의 50% 이상이 명망 있는 가문의 자제라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냈고, 훈구세력들의 강한 반발과 함께 기묘사화(己卯士禍)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결국 조광조 등 사림파가 힘을 잃게 된 후에는 현량과 제도는 폐지되고 만다. 이처럼 개혁이란 어려운 것이다. 시험 제도 하나만 바꾸어서 기존의 폐단을 모두 없애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지난 7일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개편 특별위원회가 ‘2022학년도 대입개편 최종 권고안’을 발표했다. 수능 위주의 전형 확대, 수시 수능최저학력기준 대학 자율결정, 수능 일부 과목 상대평가 유지가 골자다. 1년간 끌어오던 대입개편 방향이 종지부를 찍게됐지만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도 돌아 왔다는 비난도 제기된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항이라 모두를 만족 시키는 제도를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제일 중요한 것은 수험생이 흘린 땀을 이 사회가 최대한 공정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정부가 대학입시 제도 개선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특정 분야에 뛰어난 젊은이들이 최종학력에 상관없이 발탁될 수 있는 인재풀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