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학자이자 문화비평가였던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미디어는 메시지다.(medium is message)’라는 말은 굳이 미디어를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말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일반인들은 잘 모를 수 있다. 그 이유는 맥루한의 관점이 매우 독특하고 과장된 부분도 적지 않아 그의 생각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말은 각각의 미디어들은 고유한 기술적 속성들 때문에 전달할 수 있는 내용들이 다르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보다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매체들은 기술적으로 적합한 내용들만 전달되게 되고 이는 각각의 미디어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건 자체가 중요한 활자매체나 음성매체와 달리 영상매체인 텔레비전은 현장 화면이 가능한 사건이 중요한 사건이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텔레비전은 좋은 영상을 보낼 숭 있는 오락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게 되어 오락매체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아무리 심각한 뉴스라 하더라도 텔레비전을 통해 전달되면 흥밋거리로 생각되어 중요도가 반감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텔레비전은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도 매우 중요하다. 흔히 텔레비전을 ‘인물 중심의 매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터무니없는 궤변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학문적 가치가 없다고 무시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많은 미디어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과 스마트 폰을 통해 전달되는 SNS까지 성행하고 있어 각 매체에 대한 이용자들의 인식이나 선입견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모든 매체들이 자기를 특화 혹은 타 매체와 차별화하기 위해 전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공영방송은 상업적 매체들과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감이나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진정성 있는 주제들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제공하다는 인식이다. 어쩌면 공영방송이 추구하는 이념이자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는 인식을 시청자들에게 심어주는 데 전달하는 사람은 매우 중요하다. 공영방송 메인 뉴스 앵커가 누구이고 어떤 사회자가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는가는 그 방송사를 보는 시청자들의 인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최근 KBS가 심야뉴스 진행자로 한 인기 개그맨과 협의하는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물론 개그맨이라고 뉴스를 진행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아니 더 잘 할지도 모른다. 실제 1991년 SBS 개국 초기 유명 여배우가 10시 뉴스를 진행한 적이 있다. 옆이 터진 긴 드레스를 입고 요염한 태도로 뉴스를 진행했던 게 인상적이었다. 아마 전달하는 뉴스내용보다 그 모습만 보였던 것 같다. 이처럼 전달 내용보다 전달자의 영향력이 큰 텔레비전 속성을 감안하면, 개그맨이 진행한다는 것은 뉴스 자체가 희화될 위험이 있다. 개그맨 특유의 유머 섞인 코멘트들이 뉴스의 가치를 낮추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더 큰 우려는 그 개그맨이 오래전부터 강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편파적으로 진행하지는 않겠지만 이 같은 시청자들의 선입견은 뉴스의 신뢰도를 저하시키는 결정적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들어 과거 편파성 논란이 있었던 ‘나꼼수’ 출신들을 비롯한 정치 성향을 지닌 인사들이 지상파방송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 중에는 여러 이유로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의제재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있다.

최근 KBS나 MBC의 뉴스 시청률이 급락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보도채널이나 종합편성채널 뉴스보다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한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사람들의 뉴스 접근방식이 급속히 이동하는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양한 성향을 지닌 다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영방송 본연의 자세를 이탈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 볼 일이다. 우리 공영방송사들은 아무리 많은 매체들이 난립해도 BBC의 뉴스가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번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