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 중 1명 주52시간 시행 후 가장하고 싶은 건 "취미생활"
운동·심리상담·책읽기 등으로 '나만의 삶' 가꾸기

IT 업계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공 모(37) 씨는 최근 소소한 즐거움이 생겼다. 피아노다. 오후 6시에 퇴근해 광화문 근처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들러 한두 시간 정도 연습한 뒤 집으로 간다. 얼마 전까지는 엄두도 못 냈던 일이다. 공 씨는 "회사와 집을 반복하는 게 지금까지 일상의 전부였다"며 "7월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시작되면서 내 저녁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주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여유 시간이 늘어나면서 '퇴근 후 뭐할까?'에 대한 직장인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당겨진 퇴근 시간을 통해 평소 생각만 해왔던 취미 찾기에 몰두하는 직장인도 보인다. 지난 6월 한 교육기관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주52시간제 시행 이후 저녁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묻자 22.3%가 '취미 생활'이라 답했다. 주52시간제 도입 후 '특별한' 저녁이 있는 삶을 보내는 직장인들을 살펴봤다.

보험 영업 일을 하는 이 모(35) 씨는 최근 몸 곳곳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였다. 최근 배우기 시작한 '크로스핏' 때문이다. 벼르고 있다가 근로 시간 단축을 기점으로 큰 맘 먹고 등록했다. 이 씨는 "짧은 시간 내에 육체 능력을 극대화하는 운동인 만큼 많이 힘들다"면서도 "더 늦기 전에 해보고 싶은 건 해야겠다 싶어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두 시간 동안 달리고, 무거운 역기를 들고, 매달리는 등 에너지를 다 쏟은 후에야 귀가한다. 이 씨는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크로스핏 대회에도 도전장을 던지겠다고 밝혔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광고 회사에 근무하는 이 모(31) 씨도 역시 최근에 격한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퇴근 후 집 근처에 있는 복싱체육관에 다닌다. 평소 이종격투기 시청이 취미였기 때문에 직접 배워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야근 후에는 녹초가 돼서 배울 엄두도 못 냈는데, 요즘은 적극적으로 배우고 있다"며 "샌드백을 칠 때 스트레소 해소가 되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같은 취미라도 혼자보다는 '함께'가 더 나을 때도 있다. 서울의 한 공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지 모(25) 씨는 "인터넷을 통해 독서 토론 모임에 가입했다"며 "보름에 한 권 정도 책을 읽고 모여서 토론한다"고 말했다. 모임 후 가벼운 뒤풀이도 즐거움 중 하나다. 지 씨는 "앞당겨진 퇴근으로 개인 시간이 더 생겨난 만큼, 하고 싶은 걸 해보자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뭘 배우는 것만 하는 건 아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오롯이 자신의 내면에만 집중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천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남 모(35) 씨는 마감 후 사흘에 한 번꼴로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심리상담센터다. 남 씨는 "바쁘게 살 때는 몸은 물론이고 마음 돌볼 여유도 없었다"며 "최근에 마감 시간을 조금 당겼고, 남는 시간은 나 자신을 돌보는 데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별일이 없더라도 전문 상담사에게 털어놓으면 마음의 짐 하나를 덜어놓는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근무하고 있는 장 모(33) 씨는 금요일에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면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야 밖에 나온다. '빈지 뷰잉'(binge viewing·프로그램 몰아보기)이 취미다. 장 씨는 "보통 20편 정도 되는 드라마를 주말을 이용해서 한꺼번에 본다"며 "주말 근무가 잦았던 예전이었다면 생각할 수도 없었던 호사"라고 말했다.

▲ 신세계백화점이 직장인들의 취향에 맞춘 백화점 문화센터 강좌 92개를 신설하고 평일 저녁 시간과 주말에 집중적으로 배치한다고 11일 밝혔다.

자기 계발에 매진하는 직장인들도 상당하다.

지난 7일 퇴근 무렵의 서울 종각의 한 어학원은 수강 상담을 하려는 직장인으로 붐볐다. 영어 회화 수업을 등록한 직장인 강 모(25) 씨는 "평소에는 생각만 했던 일이었다"며 "회사 특성상 외국인 바이어와 논의할 사안이 종종 있어서 배움의 필요성을 절감해왔다"고 말했다. 강 씨는 "지난해도 수강 등록은 했는데, 야근이나 회식 탓에 결석이 잦았다"며 "이전까지 늘 시간이 모자랐다고 체감했는데 이제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학원가에서도 직장인 수강생이 늘어난 것을 체감한다고 입을 모은다. 양선열 월스트리트 잉글리쉬 종로센터장은 "7월 수강생은 한 달 전보다 23% 증가했고,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74% 늘었다"고 말했다. 양 센터장은 "직장인 수강생이 주로 몰리는 시간대도 오후 6~7시로 이전보다 한두 시간 정도 당겨진 분위기"라며 "주 52시간이 도입되면서 생긴 변화라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백화점 등 대형 쇼핑몰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도 비슷한 분위기다. 이마트는 지난달 19일 근무 시간 단축에 맞춰 저녁강좌를 30% 늘렸다. 현대백화점 역시 주52시간제 시행 이후로 20~30대 수강생 비중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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