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

사라 룬드베리│산하│124페이지



‘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는 스웨덴 화가 베타 한손(1910~1994)의 어린 시절을 그린 그래픽노블이다. 베타의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까마득한 후배인 사라 룬드베리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외롭고 힘든 길을 혼자 헤치며 꿋꿋하게 걸어간 선배 여성 화가에게 바치는 감사와 존경의 표현인 셈이다.

이 책은 자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슬픔과 기쁨을 배워 가는 한 아이의 성장을 섬세하게 그려낸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2017년 출간되자마자 스웨덴 최고의 문학상인 아우구스트상을 비롯해 스뇌볼렌상 ‘올해의 그림책’, 2018년 스웨덴 도서관협회 닐스 혼게숀상을 잇달아 받았다.

책을 펼치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늠름한 자태의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들판 끝 저 멀리에는 산들이 연이어 달리며 두툼하게 띠를 두르고 있다. 그 너머로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속표지를 지나고 장면이 바뀌면, 아슬아슬 맨발로 나뭇가지 높이 오른 여자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아이의 눈길은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그때, 아빠가 큰 소리로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베타!” 아이는 짐짓 못 들은 체한다. 아이의 마음속에선 이런 목소리가 올라온다. ‘내 몸을 한껏 웅크리면 잠자는 새처럼 보이겠지’ 대단히 인상적이고 상징적인 첫 장면이다. 베타라는 이름이 ‘마음’이라는 뜻의 스웨덴 언어 예타라는 단어와 비슷한 글자라는 암시와, 한껏 웅크린 자신을 잠자는 새처럼 여기는 아이의 자의식이 선명하다. 베타는 진흙으로 새를 빚어 엄마에게 드리고 싶다. 그 새는 둥지를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날아가고 싶어 한다. 베타는 그것만이 자기다워지는 길이라 믿는다.

반면, 엄마는 베타의 간절한 소망을 이해한다.

그런 베타의 재능을 알아보고 격려해 준다. 베타는 틈날 때마다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을 그린다. 새를 그리고, 언덕 위 풀밭으로 데리고 간 소들을 그린다. 텃밭에서 기르는 당근도, 사람도 대상이 된다.

베타는 화가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직 확신이 부족하다.

베타의 아빠는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가도 어엿한 직업일 수 있을까?” “여성이라면 주어진 길로 걷는 것이 안전하고 행복할 것 같다”고 말한다. 이는 아빠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갇혀 있는 편견의 벽일 뿐이다. 베타 앞에는 이런 벽들이 첩첩이 서 있다. 베타 안에 웅크린 새가 넓은 세상으로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이런 벽들을 넘어서야 한다.

이 책은 풍성하면서도 섬세하다. 수채가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풍경을 담고 인물의 내면을 그려냈다. 책 뒤에 실린 작가 일대기에는 베타 한손이 습작하던 소묘와 본격적인 회화 작품도 들어 있다. 책장을 다 넘기고 나면 커다란 화랑을 둘러본 듯한 느낌이 든다. 글은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이다. 절제된 표현인데도 긴 여운을 남긴다. 베타 한손이 직접 일인칭 화자로 등장하기에 그의 감정과 생각들이 간절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김동성기자/estar@joongboo.com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