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도착역을 알리는 음성방송이 송출돼도 알아들 수 없어서 안내방송을 들으면서도 TV모니터에 나오는 도착역 안내문자 자막을 보려고 대부분의 승객들은 머리를 이리저리로 돌린다.

공항대합실, 기차대합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대합실은 반사율이 높은 대리석 같은 재료를 사용하고 있어서 그 공간의 울림으로 인해 안내 방송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다.

어린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대형 공공놀이시설도 그렇다. 공공놀이시설을 다니다보면 음악이 나오고 사이사이에 안내방송도 나온다.

음악은 그런대로 음악이겠거니 하고 듣지만 안내방송은 스피커 바로 정면에서나 그 내용을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지, 스피커 중심축에서 벗어나면 전달하려는 안내 정보를 잘 알아들을 수 없다.

‘소리명료도’ 중심의 음향시설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보니 스피커가 소리를 전해주는 한계영역이 있는데 이를 무시한채 설치하다 보니 스피커 주위에서 소리는 나지만 음성메세지의 내용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 어린아이들이 많이 있는 공공놀이시설 일부 지역은 아예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은 소리 사각지대도 많이 있다.

대형 쇼핑몰, 백화점 등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도 마찬가지다. 시간에 따라 나오는 음악은 그런가 보다 하고 듣지만 음성 안내방송은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계곡, 해수욕장, 마을방송은 물론 원자력발전소 같은 특수시설 옥외 방송도 마찬가지다.

또한 옥외에서 방송하는 내용이 건물 안으로는 전달이 거의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방송음향 시설기준은 스피커출력 중심으로 설치하게 되어있어 소리만 적당하게 나면 되게 돼있다.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는 공간의 울림과 소음으로 음성 내용을 정확히 알아듣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소리가 커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소방규정에는 ‘유효하게 경보를 발할 수 있도록 설치 할 것’으로 막연하게 표현돼있다.

선진국의 재난방송음향의 기준은 스피커출력 중심의 기준이 아니라 소리명료도 중심으로 규정되어 있어 소리가 작아도 잘 알아들을 수 있다. 소리 명료도는 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소리의 명확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국제기준이 있다. 그래서 선진국은 예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극장이나 강연장, 경기장 등은 소리명료도가 0.7을 넘어야하며, 콘서트홀이나 강의실은 소리명료도가 0.6을 넘어야 하고, 일반 사무실과 쇼핑몰은 소리명료도가 0.5 정도를 초과하는 것으로 권장하고 있다. 아무리 환경이 안좋은 환경에서도 소리명료도가 0.4는 초과하게 규정하고 있다. 화장실조차도 소리명료도 중심으로 재난방송음향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선진국은 소리로 사람들의 청력을 다치게 하면 안 되기에 주변의 소음의 크기와 음성 알림메시지 소리크기를 합해서 110dB를 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방송 소리는 주변소음보다 10dB정도 크거나, 만일 60초 이상 지속적으로 방송해야할 경우는 소음보다 5dB정도 크게 규정한다. 그리고 음향설계자는 이러한 것들을 확인하기 위한 소리명료도 음향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문서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소리를 명료하게 들려줄 수 있는 기준이 없는 실정이다. 지하철에서 안내 방송을 제대로 듣지 못해 잘못 내리면 다시 타면 되지만, 만일 그 안내방송이 비상 재난발생 시 대피를 알리는 방송이라면 상당히 심각하다고 본다. 잘 듣지를 못해 제대로 대처를 못하면 사람의 목숨과 바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재평 대림대학교 방송음향영상과 교수/ (사)한국방송장비진흥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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