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전 정의당 원내대표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슬픔을 안겨줬다. 한편, 일부에서는 그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를 지적하거나 자살이라는 방식에 대해 문제제기하며 슬픔과 추모의 분위기를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노 전 의원의 죽음을 매우 애통해하고 슬퍼했다. 다만 그가 저지른 불법정치자금 수수를 무죄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자살을 옹호할 생각은 더욱 없다. 하지만 그의 잘못을 앞세워, 슬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폄훼하는 주장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언어로 그들의 삶에 대해 일관되게 말해온 좋은 정치인의 죽음이 슬픈 것이다. 그래서 추모하고 기억하고자 하는것이다.

그리고 그가 다 이루지 못하고 남긴 숙제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남은 자들의 몫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노회찬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난 뒤 그가 2012년 정의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에서 했던 연설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서울 6411번 버스 이야기’를 통해 고되게 살아가는 청소 노동자들의 삶을 전했다.

그들은 이름은 있으되 이름대로 불리지 않고 그저 ‘청소 아주머니’로 불리는 ‘투명인간’일 뿐이라고, 그들의 고단한 삶에 진보정당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당대표로서 이 진보정당을 그들 곁으로 끌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철탑위에 올라가 투쟁하는 현대차 노동자들, 스무명 넘게 죽어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5명의 용산 참사 희생자들을 호명했다.

그들 역시 ‘투명인간’일 뿐이었니까. 우리 정치에서 이 ‘투명인간’들을 직접 호명해준 정치인과 정당이 과연 얼마나 있었던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의 연설을 다시 듣는 것은, 사실은 우리 모두가 ‘존재하되 존재가 부정 당하고 있는 투명인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그 ‘투명인간’들의 삶을 말해주던 어느 정치인의 비통한 죽음이 애석하기 때문은 아닐까?

노회찬 전 의원은 애타게 그 ‘투명인간’들 곁으로 다가가고자 했다. 그리고 그 과제는 남아있는 자들의 몫이 되었다. 필자도 이 숙제를 피해갈 수는 없다.

필자는 최근 ‘수원시 빈집 및 소규모 주택 정비에 관한 조례 제정 공청회’에 참석했다. 장기간 비어있는 집을 정비하고 소규모로 주택을 정비할 수 있는 법이 제정됨에 따라 수원시도 관련 조례를 만들기 위해 공청회를 연 것이다.

이 법과 조례는 단순히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함이 아니다. 건물을 정비하면서 ‘마을’을 정비해야 한다. 마을이 사람들이 모여서 어울려 살 수 있는 ‘사람 사는 마을’이 되어야 한다. 마을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이 모아져서 하나의 철학을 완성하고 그 철학이 녹아들게끔 마을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가 회복되고 활성화된다. 겉만 번지르하고 내용은 없는 죽은 마을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냄새가 켜켜이 스며들고 오래갈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 필자는 이 법과 조례가 구현해야 할 철학과 가치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 법과 조례에서 규정하는 사업 주체는 ‘토지등소유자’다. 물론 ‘토지등소유자’가 사업 주체인것이 잘못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과연 이것만으로 앞서 언급한 철학과 가치를 구현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세입자’를 이야기 했다. 세입자들도 어떤 식으로든 이 사업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실제 마을에서 살며 그 마을의 내용을 채워가고 만들어가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세입자’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 어떤 기회도 없다. 사업이 시작되면 그저 각자의 보증금을 정산하고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이 사람들이 다 나가고 난 뒤, 화려하고 깨끗한 신축 건물이 들어선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들을 배제한 채 ‘좋은 마을, 좋은 공동체’라는 철학과 가치가 과연 구현될 수 있을까?

결국 ‘세입자’도 ‘존재하되 존재가 부정당하는 투명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도시 개발 정책의 방향과 결과는 철저하게 이를 입증해왔다. 필자는 이제 더 이상은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업성’과 ‘이윤’에만 매몰되어 온 도시개발정책, 그 밖의 수많은 정책들과 사업들이 더 이상 지속될 수는 없다. 노회찬 전 의원이 마지막까지 간절히 닿고 싶어했던 ‘투명인간’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 남은 자들의 숙제다.


유병욱 수원경실련 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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