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번 국감은 애초부터 될 성 부른 떡잎이 아니었다. 피감(被監)기관 숫자만 봐도 그렇다. 1997년 298곳이던 피감기관 수를 2001년 402곳, 2010년 516곳으로 늘리더니 올해는 630곳이나 감사를 하겠다고 덤벼들었다. 1988년 국감이 부활된 이후 25년 만에 600곳을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16개 상임위 중 운영위, 정보위, 여성가족위 등 겸임 상임위 3곳을 제외한 13개 상임위가 평균 49곳을 맡은 셈이다. 국감기간 20일 중 주말을 제외한 15일간 하루 평균 3~4개 기관에 대한 감사가 진행된 것이다. 기업인 증인 숫자도 새로운 기록이다. 삼성·현대차·SK·LG 등 대기업 경영자 등 200여명의 기업인을 증인으로 불러냈다. 의원 한 명당 주어지는 시간은 10여 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기관과 증인을 감사하겠다고 조자룡 헌 칼을 휘둘러댄 의원들에게 내실을 기대한 것 자체가 사치였다. ‘수박 겉핥기’식은 예견된 일이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지난주에 실시된 국토위와 안행위의 경기도 국감은 올해 국감의 축소판이다. 2개 상임위가 경쟁적으로 내려와서 고작 한 일이라곤 김문수 경기지사 흠집 내기였다. 바쁜 공무원들 불러 세워놓고 한 질문 또 하고, 작년 재작년에 했던 질문 또 하고, 재탕삼탕 끓인 것도 짜증스러운 데 ‘보수의 화신’ 운운하며 아까운 시간만 허비했다. 경기도가 공무원 교육용으로 발간한 경기도현대사를 놓고 벌인 말싸움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민주당 김현 의원은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교통사고라고 정의했다는 등의 이유로 책이 우(右)편향적으로 기술됐다고 따졌다. “근본적으로 교통사고라고 생각한다”는 김 지사의 답변에 김 의원은 언성을 높였다. “미군이 사과한 것을 교통사고라고… 미군 장갑차에 의한 사고인데 단순한 교통사고라고 하냐”고 핏대를 올린 것이다. 묻고 싶다. 미군 장갑차에 치인 사고가 교통사고가 아니면 도대체 무슨 사고라는 것인가? 미군이 중학교 2학년생을 장갑차로 깔아 죽이려고 작정하고 저지른 테러라는 것인가? 아니면, ‘미군의 장갑차 만행 사건’이라고 수정하라는 것인가? 참고 서적 정도에 불과한 책에 교통사고라고 쓰여있다고 내 나라 최고 지성인인 공무원들이 세뇌당할 것이라고 생각한 건가? 아무것도 모른 채 좌(左)편향적으로 기술된 역사 교과서로 공부한 2030세대가 문제지, 1~2시간짜리 교양교육 받는 공무원들이 걱정인가? 기껏해야 고십(gosip)감을 침소봉대하려고 수원까지 행차한 것인가?
15대 때부터 국정감사를 감시해온 유일한 민간기구인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은 최근 국감을 중간평가하면서 ‘C학점’을 줬다. 기업인 증인에 대한 제대로 된 신문이 이뤄지지 않았고, 국감을 대결의 장(場)으로 변질시켰다는 게 모니터단의 총평이다. 난 모니터단이 후한 점수를 줬다고 생각한다. 조직에 항명(抗命)한 윤석렬 검사를 능가한 국감 스타가 배출됐나? 청와대와 정부를 굴복시킨 ‘한 건’을 터트린 의원은 있었나? 정쟁(政爭)에 관한한 역대 최강인 19대 국회의원들에게 우린 도대체 무얼 기대했던 것일까. 느낌 알았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