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김상곤은 호굴(虎屈)에 함께 뛰어든 운명이다. 안철수는 김상곤을 호랑이 굴로 끌어들였다. 맨 손의 안철수를 따라나선 몇 안되는 포수(砲手)중 한 명이 김상곤이다. 김상곤은 이른바 ‘안풍(安風·안철수 바람)’을 타고 단숨에 호랑이 숨통을 조였다. 공허한 새정치 열망까지 보태졌다. 김상곤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방아쇠를 안 당겨도 호랑이 몇 마리쯤은 질식사(窒息死) 시킬 듯 맹렬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원혜영과 김진표는 졸지에 제물(祭物)로 쓰여질 호피(虎皮)신세가 됐다. 남경필은 15년 호형(呼兄) 정병국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스스로 차출(差出)됐다. 안철수에게 김상곤은 필요조건이고, 김상곤에게 안철수는 충분조건이었다. ‘6·4대첩’ 전초전을 달궜던 새정치 ‘투톱’의 허니문 효과는 여기까지 였다.

김상곤이 내쳐 쏜 ‘무상(無償)버스’ 한 발은 중반전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놨다. ‘소득재분배의 한 방법이고, 복지국가를 향한 소중한 전진’이라고 새겨 넣은 회심의 탄환은 방향을 잃었다. 엉뚱한 곳을 향해 쏜 총알이 자신을 관통했다. 공짜 ‘역풍(逆風)’은 식상해진 ‘안풍’을 뚫었다. ‘공짜로 흥(興)한 자(者), 공짜로 망(亡)한다’는 패러디가 밥상머리에 올랐다. ‘차별적 복지가 시대정신’이라는 조롱이 소주잔, 막걸리잔에 녹아 들었다. 남경필을 위협하던 지지율은 폭락했다. 김진표에게 추월당했다. 원혜영의 표현을 빌리면, “대중의 평가는 끝났다.”

이쯤되면, 복기(復棋)해 볼 때가 됐다. 김상곤은 크게 세 가지 오판(誤判)을 했다. 첫째, 너무 순진했다. 안철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그리고, 호랑이 굴의 생리(生理)를 너무 몰랐다. 무상급식이 성공했던 이유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민주당이 손뼉을 마주쳐서다. 지금은 어떤가? 당권을 쥔 안철수가 방관한다. 필연(必然)이다. 안철수의 생각은 ‘중(中)부담 중복지’다. 적당히 내고 적당히 받자는 주의다. 김상곤의 철학은 ‘소(少)부담 대(大)복지’다. 덜 내고 많이 받자는 쪽이다. 안철수는 생각하고, 김상곤은 행동한다. 코드가 안맞는다. ‘한 지붕 두 가족’ 민주당은 무시 모드다. 원혜영·김진표는 노골적으로 반대한다. 박원순은 사진만 찍어준다. 리스크가 크다고 본 것이다. 박원순·송영길이 받고, 안철수와 민주당이 튀기고, 시장·군수 후보들이 좌판을 벌여야 대박인데, 흥행 공식이 깨졌다.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호굴의 법칙이다.

둘째, 물건을 잘못 골랐다. 수요자가 없다. 초·중·고생 십중팔구는 버스를 안탄다. 자가용급 통학버스를 놔두고 굳이 버스를 탈 이유가 없다. 지난해 교통카드를 이용한 승객중 초등학생은 1%, 중·고등학생은 9.9%였다. 학생 10명중 1명만 버스를 탄 셈이다. 김상곤 캠프에서 발표한 자료다. 도시락은 보편적이지만, 버스는 차별적이라는 근거다. 65세 이상 어르신들은 물건 고르는 데 신중하다. 호객행위에 잘 넘어가지 않는다. 내 집 살림보다 나라 살림 걱정이 더 크다. 전국민 70%가 공감하지 않았고(3월14일 JTBC 여론조사), 경기도민 66%가 반대(3월 26일 한국일보 여론조사)할 수밖에 없는 시장 구조를 무시했다.

셋째, 휘발성을 간과했다. 무상버스는 김상곤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다. 보완책은 짝퉁 취급이다. 김‘상’곤·안철‘수’·박‘원’순을 엮은 ‘상수원벨트’도 반응이 신통치 않다. 김상곤을 검색하면 무상버스, 공짜버스만 나온다. 김진표·원혜영도 피해자다. 무상버스는 원혜영의 버스완전공영제를 태워버렸다. 김진표의 순환철도(G1X)도 멈춰 세웠다.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불랙홀은 이제 창조주까지 집어삼킬 기세다.

누차 강조하지만, 난 형편만 되면 공짜는 급식·버스·의료·아파트 다 좋다는 부류다. 문제는 예산이다. 김상곤은 경기도 예산을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면 충분히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가능한 얘기다. 올해 무상급식비용 475억 원만 잘라내면 당장 내년 예산은 마련할 수 있다. 무상급식처럼 시장·군수가 십시일반하면 큰 부담이 안된다고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현직 시장·군수 19명중 단 1명도 무상버스에 오르지 않고 있다. 한 표가 궁한 그들이 텅 빈 버스를 그냥 보내는 이유는 뻔하다. 사지(死地)행 버스에 올라타서 개죽음 당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갔더니 호랑이는 없더라’던 안철수는 결국 또 ‘철수(撤收)’했다. 이제 김상곤 차례다. 무상버스에서 내리지 않으면, 3선 교육감직을 내던진 의미가 없어진다. 이대로 ‘무난히 가면 무난히 진다’

한동훈 정치부장/donghun@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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