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강 경기도의회를 꼽으라면 단연코 4대(1995~1998년)다. 여야(與野)의 거물급 정치인을 다수 배출했다. 4대가 내 나라 정치의 화수분였다고 해도 식언이 아니다. 현·전직 국회의원 8명을 배출했다. 박기춘 국토교통위원장(3선)이 4대 출신이다. 김학용·백재현 재선 듀오가 4대 동기다. 정장선(3선), 박순자(재선), 신현태·박혁규·이상락(초선) 전 의원은 헌정회 멤버다. 시장·군수도 7명이나 된다. 오세장 동두천시장(3선)과 김윤식 시흥시장(재선)은 현역이다. 김규배 전 연천군수(3선), 백재현 전 광명시장(재선), 홍영기 전 용인시장, 김동식 전 김포시장, 박윤국 전 포천시장(초선)이 4대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148명중 15명이 국회의원, 시장·군수로 변신했다. 10명중 1명이 도의회를 발판 삼아 체급을 올린 셈이다. 3대는 원유철(4선), 5~6대는 함진규(초선) 국회의원 1명씩만 배출했다. 7~8대는 단 1명도 여의도행 티켓을 끊지 못했다.

4대는 무보수(無報酬)명예직이었다. 제도는 부실했다. 여건은 척박했다. 경조사비에 허덕였다. “차라리 자원봉사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던 그들의 푸념이 지금도 생생하다. 4대가 군계일학이란 평가를 받는 것은 단지 입신양명한 정치인을 많이 배출해서가 아니다. 이른바 SKY 출신이 많아서도 아니다. 그들은 정치를 알았다. 민심과 여론에 먼저 귀를 기울였다. 취할 대의(大義)와 버릴 당리(黨利)는 확실히 구분했다. 낡은 이념은 멀리했다. 파당(派黨)을 짓지 않았다. 생떼를 쓰면 개작두로 쳐내는 결단도 내릴 줄도 알았다. 그들을 관통하는 정치는 실용주의였다. 민심은 그들을 꽃가마에 태워 여의도로, 시청·군청으로 보냈다.

석 달 전 출범한 9대(2014~2018년)는 개인 경쟁력만 놓고보면 4대 때 보다 한 차원 높다. 자격과 실력을 겸비한 유망주들이 대거 입성했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저런 분들이 왜 도의회에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여의도에서 잔뼈가 굵은 남 지사도 그들의 전문성 만큼은 인정한 것이다. 사석에서 피감기관 임직원에게 ‘깜’을 골라달라고 하면 권·김·이 등등, 이름이 술술 나온다. 국회의원, 시장·군수깜이 차고 넘친다는 게 공통된 평가다. 다만, 4대와 비교하면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깜이다’는 확신이 약하다. ‘깜인 것 같은데…’ 여운을 남긴다. 8대에 대한 평가도 지금과 흡사했다.

9대는 유급제(有給制)다. 올해 연봉이 6천162만 원이다. 마 졸 떼면 월 400만 원 정도 된다고 한다. 몇 푼 안되지만 업무추진비도 있다. 선거법 덕에 경조사비에서 자유로워졌다. 출판기념회도 열 수 있다. 입법보좌 인력이 대폭 늘었다. 공천 시달림만 없으면 할만한 직업이 됐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직업 만족도가 높아진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큰 꿈을 꿔볼 만한 환경인데도, ‘깜’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다. 원인은 다양하다. 민심과 여론을 외면한다. 대의와 사리(私理) 분간이 흐릿하다. 끼리끼리 분파(分派)를 만든다. 개인 플레이가 심하다. 안팎의 갈등 조정에 서툴다. 해당(害黨)·이적(利敵)행위를 일벌백계할 보스도 없다. 그들을 관통하는 정치는 개인주의다. 지금 상태라면, 민심이 그들에게 내줄 것은 가시방석뿐이다.

사회통합부지사 파견 논란은 그들만의 정치가 만들어낸 졸작품이다. (솔직히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지겹다). 연정(聯政)에 합의했지만 여야는 여전히 남이다. 당론 표결 결과는 불변의 가치가 될 수 없다. 유연해야 정치다. 상황은 변했다. 처음으로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장을 인사청문회장에 세웠다. 낙마도 시켰다. 9대의 업적이다. 부지사직이 넉 달째 공석이다. 땜질하는 부지사와 기조실장은 파김치다. 어차피 실험인데 실패하면 어떤가. 죽어봐야 저승을 안다고 했다. 탁상공론으로 보낼 시간이 없다. 차라리 재표결을 해서라도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결단력이 곧 실용이다. 7대 때 시작된 정치 불임(不妊)을 9대에선 끝내야 한다. 그래야 도의회 위상을 높일 수 있다. 주목받는 ‘깜’중에 1년6개월, 4년 뒤 꽃가마에 오를 진짜 ‘깜’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한동훈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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