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가팔라진다. ‘손톱 밑 가시’가 ‘암덩어리’로 진화한다. 규제(規制)는 ‘단두대’에 올려야 할 ‘쳐부술 원수(怨讐)’가 된다. 이른바 ‘돌직구’ 화법(話法)은 울림이 강하다. 갑갑했던 국민 가슴이 뻥 뚫린다. ‘그냥 갑(甲)’ 철밥통 관료(官僚)가 ‘그때그때 갑’ 쇠밥통 향리(鄕吏)를 다그친다. 수술대에 올릴 환자가 선택된다. 고관(高官), 미관(微官) 할 것 없이 메스를 들이댄다. 하루아침에 ‘검토’가 ‘수용’된다. 한 칼이면 기사회생한다. ‘참고’는 ‘반영’, ‘감안’은 ‘추진’으로 바뀐다. 단박에 병세가 호전된다. 간택받은 환자의 암덩어리가 제거된다. 가시 뽑는 것은 일도 아니다. 유쾌, 통쾌, 상쾌는 여기까지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펑퍼짐해진다. 대통령 3년차, 사생결단식 혁명은 끝났다. ‘종합적인’, ‘의견 수렴’, ‘합리적인’…. 수사(修辭)가 붙는다. ‘변화구’ 화법은 떨림이 약하다. 국민 가슴은 다시 답답해진다. 국가공무원이 지방공무원을 윽박지른다. 귀찮게 하지 말라고.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가 동네 병원 진통제로 연명한다. 대작(大爵), 말직(末職) 할 것 없이 환자를 방치한다. ‘적극 검토·부분 참고·긍정 감안’…. 리메이크된 유행가가 관가(官家)를 휩쓴다. 10년 염불도 도로아미타불이다. 손톱에 박힌 가시가 뼛속까지 파고든다. 작은 종양이 암덩어리로 자란다. 불쾌, 원통, 찜찜은 지금부터다.

경기도 정치인들의 말끝은 뭉툭하다. ‘철폐’라고 쓰면 ‘완화’라고 읽는다. ‘혁파’라고 하면 ‘합리화’라고 물탄다. ‘소 잡는 칼’ 써야 할 때 ‘닭 잡는 칼’ 꺼내든다. 조억동 광주시장이 공식 회의에서 핏대를 올린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거야”, 김성기 가평군수가 초를 친다. “숨어서 해야지. 자꾸 (지방을)자극하니 더 안되는 거야” 숨통 조여오는 암 수술은 지레 겁먹고 포기한다. 가시만 뽑혀도 천운(天運)이라고 자위한다. ‘모래알’ 근성은 유전(遺傳)된다. 류성룡이 통탄할 일이다.

지방 정치인들의 말끝은 날이 섰다. ‘국가발전’이라고 읽으면 ‘지방공멸’이라고 쓴다. ‘상생’이라고 하면 ‘상극’이라고 비튼다. 닭 잡을때도 소 잡는 칼을 쓴다. 농진청, LH공사…. 경기도의 국가 부처, 공기업을 몽땅 집어삼키고도 ‘나는 아직 배고프다’고 징징거린다. 국토균형발전 대책부터 내놓으라고 성화다. 풍신수길이 박장대소할 노릇이다.

규제는 디테일을 먹고 사는 악마다. 작동 원리는 단순하다. 강한 쪽으로 원심력이 생긴다. 국민 가슴 쿵쿵 울리는 결기(決起) 앞에선 꼬리를 내린다. 파주 LCD와 경인교대는 한계를 뛰어 넘었다. 반대일때는 반탄력이 역회전한다. 국민 가슴 쾅쾅치게 만드는 눈치 앞에선 물 샐 틈 없다. 경기도에 투자 대기중인 자금이 무려 67조 원에 달한다. 어림잡아 15만 명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줄 수 있는 피 같은 돈이 썩고 있다.

난 악마(규제)를 보았다. 경기도가 축조(築造)중인 삼성 표적 규제는 ‘듣보잡’이다. 모법(母法·화학물질관리법)에 없는 기준을 엉뚱한 법(대기환경보전법)을 끌어다 만든다. 업계 3, 4등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1등만 타깃이다. 스토킹 입법(立法)의 배후에 목소리 큰 정치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쇠밥통이 무리수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다. 악마는 이렇게 허접한 배경속에서 태어난다.

수도권 인구를 억제하겠다며 만들어낸 수도권정비계획법을 보라. 지난 30년간 수도권 인구는 배(倍) 이상 늘었다. 제구실 못해도 서슬만큼은 여전히 시퍼렇다. 호부호형(呼父呼兄) 못하는 경기도는 퉁퉁 불어터진 라면만 먹고 있다. 내 나라 경제, 경기도 살림이 불쌍하다.

한동훈 정치부장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