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같은 청사’는 용꿈을 일장춘몽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고,

‘코엑스 같은 센터’는 정치 여정에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난 광교신도시에 산다. 분당에서 일했다. 수지에서 10년 살았다. 처가(妻家)는 동탄이다. ‘전통 버블’과 ‘신흥 버블’이 일터였고, 삶터다. 주거(住居) 의지가 소유욕을 꺾은 결과다. 전세난민(傳貰難民)처럼 떠돌다 보니 신도시 어답터(adopte)가 됐다. 신도시 문제는 살아보면 안다. 계획대로만 되면 A급이다. 어설픈 공명심과 돈벌이가 끼어들면 B급으로 추락한다. 분칠을 하면 할수록 C급 기형아로 바뀐다.

신도시 역사가 반면교사(反面敎師)다. ‘천당 아래’ 분당은 탄천 서쪽에 마천루(摩天樓)를 지어 망가졌다. ‘죽어서 용인’(死居龍仁)이라는 수지는 한 때 산 자의 무덤이란 오명을 썼다. 동탄은 쌍둥이 신도시 때문에 교통지옥의 문이 열리고 있다.

광교는 어떤가? 소방서 터를 이마트에 팔아먹은 탓에 관문(關門)이 병목이 돼버렸다. 초등학교 정문 앞 어린이보호구역에 아파트 공사장 입구가 났다.(수원부시장이 해결해줘서 그나마 다행이다) 박물관엔 유물이 없다. 도서관엔 볼만한 책이 없다. 실개천은 장마철에만 흐른다. 공연장, 미술관은 사치다. 멀티플렉스도 없다. 그만하자. 더 지적질하면 항의전화가 걸려올 것 같다.

남경필 경기지사(남경필)와 염태영 수원시장(염태영)이 광교에 붓을 댔다. 남경필은 경기도청 광교신청사에 ‘놀랄만한’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염태영은 꺼져가던 컨벤션센터에 다시 불을 지폈다. 아이러니하다. ‘토목정치’와는 거리가 먼 그들이 광교에서만큼은 ‘건설정치’를 하려든다. 정치적(남경필), 생물적(염태영) 고향에 비까번쩍한 유산(遺産)을 남기고 싶은 것일까? 번지수가 틀렸다.

2천700억 원짜리 ‘구글 같은 청사’는 남경필의 ‘용꿈’을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만들 수도 있다. 백성이 피폐(疲弊)할 때 일으킨 관사(官事)가 악몽이 된 역사는 동서고금(東西古今)에 부지기수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전(前) 성남·용인시장은 신청사를 짓고 정치생명이 끊겼다. 3천150억 원이 들어가는 ‘코엑스 같은 센터’는 염태영의 전도(前途)에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변변한 호텔도 없는 곳에서 마이스(MICE)산업이라니. 발상 자체가 객기(客氣)다. 나 같으면 변방(수원)에서 신상(新商)을 선보이지는 않는다.

이제와서 무책임하게 백지화 하라는 것이 아니다. 동행할 수 있는 신작로를 외면하고, 벼룻길로 마이웨이하지 말라는 얘기다. 남경필은 신청사가 필요하다. 현 청사도 비워놓을 수 없다. 염태영은 시의회 의사당이 필요하다. 현 청사는 과포화 상태다. 곳간 사정이 넉넉치 않은 것도 동병상련(同病相憐)이다. 광교신청사 터를 쪼개 팔아서 자금을 조달해보려는 것은 하책(下策)이다. 의사당 터와 주상복합 서너 개 층과 맞바꾸려는 것은 더 하책이다. 허기를 못 참고 오늘 다 먹어치우면, 내일은 굶어야 하는 게 이치다.

부족한 쪽은 거래가 된다. 차고 넘치면 흥정할 이유가 없다. 둘은 히든카드 한 장씩을 손에 쥐고 있다. 남경필은 ‘건물’, 염태영은 ‘자금’이다. 남경필은 현 청사와 도의회 의사당을 수원시청사와 시의회 의사당용으로 넘길 수 있다. 염태영은 시(市)청사와 의사당 터를 팔아서 도청사와 도의회 의사당을 사들이면 몇 곱은 남길 수 있다. 주고 받기만 하면 모든 문제를 원샷으로 해결할 수 있다. 역사는 ‘메가딜’로 기록할 것이다. 남경필과 염태영이 경기도와 수원을 살리는 ‘착한 정치’를 했다는 추임새는 덤이다. 판을 키우면 경기도문화의전당 건물과 땅, 수원월드컵경기장 지분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남경필과 염태영은 판을 벌여야 한다. 지역 정치권은 초당(超黨)적으로 힘을 보태줘야 한다. 원로그룹이 나서서 여론을 모아주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경기도와 수원, 그리고 미래를 위해 맞바꾸는 ‘통 큰 정치’를 상상해본다.

한동훈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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