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1년(영조37) 1월 4일 영부사 이천보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40여 일 후인 2월 14일 우의정 민백상도 죽음을 맞았다. 여기에 채 20일도 안 돼 3월 4일 좌의정 이후가 돌연 별세했다. 당대 최고의 자리에 있던 정승 3명이 두 달 사이에 세상을 등진 것이다. 삼정승이 갑자기 죽은 것은 조선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죽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창덕궁 금원(禁苑)에 효종이 심은 크기가 몇 아름이나 되는 소나무 세 그루가 줄지어 있고 이를 ‘삼정승 나무’라고 했는데, 사도세자가 동궁 시절 이 나무들을 베어 부정을 탔고, 정승 세 명이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사실일 수 있겠는가? 이들 세 명의 정승은 국왕 영조로부터 사도세자를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 사람이었는데, 단순히 사도세자가 나무를 베었다고 해서 이들이 갑자기 죽었다고 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믿기 어렵다.

그렇다면 백성들은 왜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까? 그것은 이들이 단순히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당시에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조실록에는 삼정승의 죽음이 병사(病死)로 기록돼 있지만 고종실록 36년(1899) 11월 19일 기록에는 “눈물을 흘려 통곡하며 맹세코 살기를 바라지 않고 서로 손잡고 영결하면서 연달아 죽었으니 그 뛰어난 충성과 뛰어난 절개는 천지를 지탱할 수 있고 해와 달처럼 빛났습니다” 라며 세 정승이 연이어 자살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천보는 영의정을 역임한 노론의 영수였다. 민백상이나 이후 역시 모두 노론이었다. 이들은 노론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당파만 생각하지 않고 소론과 남인 등과 연대한 합리적 정치운영으로 영조의 탕평정책을 뒷받침 해주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소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사도세자를 도와 안정된 정국운영을 하려 했다. 그런데 실제 정국운영에서의 문제는 영조와 사도세자였다. 삼정승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조는 사도세자를 미워했고,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일이 바로 1761년에 있었던 사도세자의 ‘평양 원유(遠遊) 사건’이었다. 사도세자가 영조 몰래 비밀리에 평양에 다녀왔는데, 훗날 이 일은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된다. 영조의 막내 딸인 화완옹주와 후궁인 문숙의가 우울증을 치료하라며 평양행을 추천했기에 사도세자는 아무 생각 없이 떠났던 것이었는데, 그가 여행에서 돌아온 뒤 평양의 군사들과 연계해 친위반란을 일으켜 영조를 제거하고 국왕이 되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사도세자 반대세력들의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서 탕평 정국이 붕괴될 처지에 이르자 삼정승은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사도세자의 후계 구도를 안정화하지 못한 책임과 탕평정국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자신들이 자결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특히 자신들이 죽는다면 더 이상 사도세자의 평양 원유사건이 거론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비록 가족들과 정치적 동지들에게 슬픈 일이기는 하나 조정의 안정과 나라를 위해서는 자신들이 죽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이해가 안갈 수 도 있지만, 명분과 절의를 중시하는 조선사회의 관념으로 본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이들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던졌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들의 죽음을 원통해 한 백성들은 사도세자가 너무나도 야속해 ‘동궁이 금원의 나무를 베어 삼정승이 죽었다’는 기이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답답한 정치 현실 속에서 촌철살인의 입담과 해학으로 많은 이들을 속 시원하게 해주었던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지난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인터넷 댓글 조작혐의를 받고 있는 드루킹 세력으로부터 4천만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에 대한 도덕적 책임으로 비극적 선택을 한 것이다. 평생 동안 서민을 위한 정치인이란 소리를 듣던 그는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자신이 쌓아온 진보정치인의 이미지는 물론 자신이 속한 정당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무척이나 두려워 했을 것이다. 정치자금법 등 현 제도가 갖고 있는 문제를 떠나서 그의 죽음이 한국 정치의 모순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그가 평생 꿈꿨던 진정으로 평등한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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