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 “덥다, 덥다.” 했지만, 올 여름만큼 더웠던 기억은 없다. 실제로 기상청에 따르면, 올 여름 기온은 한반도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1907년 이래 111년 만에 가장 높았다.

나의 고향이자 터전인 경기도 광주 역시 지난 8월1일 기온이 41.9도로 기상 관측 이래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이 기간 모처럼 국회 휴지기를 맞이해 지역 곳곳의 복달임 행사를 다녔다. 당시 가장 우려됐던 일이 어르신들의 건강이었다. 실제로 올 폭염으로 전국에서 40명이 사망했다. 이쯤이면 올 폭염은 재난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폭염에 가장 고통스러웠을 이들은 에어컨조차 제대로 켜지 못하고, 찜통더위도 피하지 못했을 서민들일 것이다. 그리고 체력이 약한 어르신들일 것이다. 이웃나라에선 우리와 같은 폭염에 에어컨 사용을 권장하고, 우리보다 국민총생산(GNP)이 낮은 나라 국민들 역시 전기료 걱정 없이 에어컨을 사용한다는 언론보도를 보면, 한없이 아쉬울 뿐이다.

정치는 힘없는 이들의 힘이 되어주는 것이고, 정치인의 자세는 근심할 일은 남보다 먼저 근심하고, 즐거워할 일은 남보다 나중에 즐거워해야 한다는 ‘선우후락(先憂後樂)’이란 생각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연현상인 폭염 앞에서조차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 받는 모습에 나를 다시 되돌아보게 됐다. 국민에게 참으로 죄송하고, 죄송하다.

올 여름 폭염에 우리 국민이 에어컨을 선뜻 켜지 못한 건, 바로 전기누진세 때문이다.

전기누진세는 1974년 최초 시행됐다. 그해 전 세계에 불어 닥친 석유파동에 대한 독재 정부의 대응이었다. 위기해소를 위해 정부나 기업이 아닌 국민을 옥죈 셈이다.

하지만 한국전력공사는 석유파동 극복 이후에도 에너지 절감을 이유로 누진세와 함께 누진세 적용구간인 3kw를 2018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부채’ 부치던 시절 만든 제도와 기준을 ‘선풍기 시대’를 지나 ‘에어컨 시대’가 왔음에도 바꾸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40년이 넘는 동안 대한민국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국민 삶 또한 발전했다. 당연히 국민 1인당 전력사용량 역시 급격히 증가했다. 그럼에도 정부와 한전은 이에 따른 제도와 누진세 적용구간을 개선하기보다 이를 유지하며, 전기요금만 지속적으로 인상해 왔다. 한 마디로 전력산업에서 독점인 공기업이 국민을 상대로 수익만 창출해 왔던 것이다. 이 사이에 공기업의 ‘공공성’은 허울만 남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기업 개혁’이 항상 제기돼 왔고 추진됐다. 공기업 개혁의 시발점은 잃어버린 공공성을 다시 회복하고, 국민에게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한전의 공공성 회복은 시대와 국민 삶의 변화에 맞게 전기요금체계를 개선하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이를 위해 현행 한전이 요금을 책정하고, 전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인가하는 전기요금 결정방식을 정부가 요금을 책정하고 전기위원회가 심의하는 방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결코 쉽지 않은 고육지책이지만, 이러한 내용의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께 미리 보고 드린다.

최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당정협의를 통해 한시적 누진세 완화를 시행키로 했다. 매우 늦었지만, 그나마 국민 부담을 덜어주는 측면에서 환영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전기요금체계 개선이 아닌 한시적이고 임시방편인 대책으로 한계는 여전하다.

아직 여름이 끝나지 않았지만 불볕더위와 열대야는 끝나가고 있다. 그러나 올해의 여름은 또 다시 올 것이다. 특히 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인해 돌아오는 여름이 또 얼마나 무더울지 모른다. 그 때도 우리 국민이 전기요금 무서워 에어컨조차 틀지 못해선 안 된다. 만약 올해와 같은 일이 반복되면 전기요금은 세금을 가혹하게 거둬들여 국민을 괴롭히는 ‘가렴주구(苛斂誅求)’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부채’가 아닌, ‘에어컨 리모컨’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정부와 한전에 말하고 싶다.

 

임종성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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