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자리 문제가 화두다. 실은 진작 경고등이 들어왔었지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채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 형국이다. 새겨야 할 것은, 실업(失業) 문제는 일시적인 정책의 결과라기보다는 구조적이고 시대적인 문제라는 사실이다. 실업은 여러 증상들 중 하나일 뿐 실은 우리는 매우 복합적인 중병에 걸려있다. 진통제도 필요하겠지만 정확한 진단과 근원적인 처방이 더 중요하다.

내수시장에 한계가 분명한 우리나라 경제는 누군가 바깥에서 돈을 벌어 들여와야 하는 구조다. 지금까지는 대기업을 필두로 돈을 벌어와 세금을 내고 연관 업체들이 일자리를 제공해왔다. 그러나 국제경쟁력을 갖춘 ‘선수’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대기업 의존성이 없는 강소기업도 좀처럼 늘어나지 않고 있다. 대기업마저 특정 사업에 의존하는 수익 구조인데다 그들 자신도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당장 내년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돈이 어디서 절로 솟아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벌어야 나눠 쓸 돈이 생긴다. 국민들은 이미 GDP규모 세계 12위 대한민국의 생활환경에 익숙해졌다. 조금만 소득이 줄고 생활여건이 어려워져도 고통이 클 수밖에 없다. 현상 유지도 오래가지 못한다. 지금껏 벌어놓은 것을 밑천으로 앞으로 수년 내에 진짜 선진국 반열에 오르지 못하면 젊은 세대는 한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가난의 시대로 되돌아갈 것이다. 끔찍할 것이다.

이 와중에도 전세계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정사정 보지 않고 가속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불쑥 다가왔다. 우리나라도 시끌벅적했지만 아직도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구조개혁 청사진은 나오지 않고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주사바늘처럼 아프게 다가오기는 했으나 위기는 어차피 필연이었다.

과학기술 발전은 산업 구조의 변화를 가져온다. 기성 산업이 사라지고 새로운 산업이 등장한다. 자동차가 나옴으로써 마부라는 직업이 사라지고 버스기사라는 직업이 생겼다. 미래에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면 운전기사는 줄어들고 공공데이터를 가공하여 파는 회사 직원이 생겨날 것이다. 잊지 말라. 자율주행차는 시장에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먼저 내놓느냐의 문제일 뿐.

먼저 개인들과 민간기업들이 명심해야 할 교훈이 있다.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월급쟁이건 자영업자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낙오한다. 과학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질수록 산업의 명멸도 비례하여 빨라진다. 일자리가 없어지고 생겨나는 것도 예전처럼 안일하게 생각하다간 대책 없이 거리로 나앉게 되기 십상이다.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식이면 다음 세대는 절망할 것이고 사회는 분열될 것이다. 최소한의 공동체 의식이 절실하다.

정부 당국과 정치권도 명심할 것이 있다. 새 집이 있어야 헌 집을 버릴 수 있다. 국민들이 경제 지형 변화에 적응하여 업종을 전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핵심은 새로운 산업이 열리도록 파괴적 혁신의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먼저 현재 가용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것을 권한다. 우리의 과학기술 연구 인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연구개발 역량을 한층 끌어올리고 그 성과를 산업으로 이끌어내는데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이른 바 유망 기술의 개발은 자체개발 능력과 사업 능력을 갖추고 있는 민간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그리고 공공부문은 무엇을 맡을지 고민해야 한다.

공공부문의 연구개발 지출은 두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는 민간기업들이 투자하려 하지 않는 부문에 눈을 돌려야 한다. 예컨대, 스마트 교통시스템이라든가 요양/보육 복지시설, 재난안전 등에 제대로 된 연구개발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당장 돈이 되지는 않겠지만 사회 전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폭증하는 복지비용을 낮춰줄 대안이다. 실제 환경에서 개발과정을 거쳐 검증된 기술들은 장기적으로 우리의 중소기업들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텃밭이 될 것이다.

공공부문이 집중해야 할 두 번째는 사회적 잠재역량의 제고다. 급할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완전히 궤도에 오른 선진국에서는 과학이 사회전반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고 일반 시민들도 과학기술을 낯설어하지 않는다. 일상생활과 연구개발 사이의 문턱이 낮다. 어려서부터 연구개발과정을 보고 듣고 자란다. 과학이 기술로, 기술이 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합리적인 시스템도 구축되어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누구나 연구자, 개발자, 사업가가 될 수 있다. 공공의 역할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먹거리가 튀어 나올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초유의 초저출산 초고령화 고실업 시대를 경기도는 어떻게 헤쳐 나갈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정택동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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