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중견 제약유통업체인 제신약품(경기 구리 소재)이 3년여 만에 회생계획안 인가결정을 받았다. 제신약품은 2018년 9월 말까지 주요 자산인 유통센터를 매각하고, 재임대하는 Sales & Leases Back 방식의 회생계획안으로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제신약품은 업력이 30년이 넘고 매출이 2천억 원에 달했던 중견기업으로, 부채의 구조에서 매출채권 담보형태의 회생담보권 채무가 많은데, 이점은 병원의 회생절차에서도 비슷하게 양상으로 나타난다.

병원의 경우 ‘건강보험관리공단 보험금’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키는데, 유통회사의 경우 ‘병의원 매출채권’이 담보가 된다.

제신약품은 회생신청 전까지 아산병원에서 연간 400억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아산병원에서 받을 매출채권은 금융기관과 제약사에 양도담보하였다. 제신약품이 회생을 신청하자 아산병원은 제신약품에 지급할 매출채권을 A금융기관과 B제약사 중, 어느 쪽에 지급해야 할는지 모른다는 취지로 법원에 공탁하였다.

피공탁인을 A, B로 지정하면서 사실상 아산병원의 매출채권은 제신약품과는 상관없게 되었다.

하지만, 아산병원에서 받을 매출채권은 제신약품의 자산이기 때문에 회생절차에 의하여 A, B채권자가 변제받아야 한다. 그럼 얼마를 변제받아야 할 것인가.

변제금액과 관련된 회생절차의 기본 원칙 중 하나가 청산가치 보장의 원칙이다. 개시결정일에 즉시 처분하여 변제하는 금액보다 회생절차를 통해서 변제받는 금액이 조금이라도 더 커야한다.

청산가치에 관련하여 그 산정방법은 법률에 아무런 규정이 없다. 다만, 회생실무에서 매출채권의 청산가치는 회수 Risk를 감가하고 남은 가치로 본다.

청산가치를 산정하는 조사위원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아산병원에서 받은 매출채권을 회수 못한 가능성은 몇 퍼센트일까. 조사위원은 이미 공탁된 매출채권의 회수 Risk를 0%로 보았다. 왜? 법원에 공탁된 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은 글쎄. 전쟁이나, 국가의 붕괴 같은 리스크가 아니고는 달리 없지 않을까.

당연히 매출채권 전액을 회수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청산가치는 100%로 산정되었다(궁극적으로 공탁금이 채무자 회사에게 귀속되는 여부는 조사위원이 조사할 사항이 아니다). 채무자나 법원 또한 그 과정에 동의하였다.

한데, 회생계획안 작성 시에 문제가 발생되었다. 청산가치가 100%라는 말은 회생절차 개시결정일에 받을 금액이 100%라는 말이다.

앞서 청산가치 보장의 원칙에 대해 언급했다. 청산가치 보장의 원칙에 의하면 A, B채권자는 개시결정일에도 아산병원 매출채권의 100%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3년이나 감수했다. 즉, 감수하는 기간 동안의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데, 이때 산정되는 이자가 적정할인율이다.

이 사건에서 적정할인율은 약 3% 후반이었고, 공탁금은 44억원이었다. 연간 1억6천만원의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3년간의 이자의 합계가 5억원에 육박한다. 더 큰 문제는 A, B채권자가 공탁금을 두고 쟁송 중이라 언제 지급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제신약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아산재단의 매출채권이 공탁된 즉시 사실상 권리를 모두 상실하였는데, 채권자들의 쟁송이 끝날 때까지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A, B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회생계획안을 작성할 수도 있겠지만, 법원은 청산가치 보장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하여 회생절차를 폐지하게 된다.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실무에서 이런 부조리한 상황이 종종 발생된다.

청산가치를 산정한 조사위원이 업무에 충실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채무자가 공탁된 매출채권의 이자를 한없이 변제하여야 한다는 것도 불합리하다.

이 사건의 경우 채권자의 양해와 법원의 지도로 청산가치를 건드리지 않고 비교적 합리적인 수준에서 회생계획안을 수립할 수 있었지만, 자칫 회생절차가 폐지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조사위원이 한번 산정한 청산가치를 건드리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채무자 회사의 입장에서는 매출채권, 공탁금의 청산가치 산정시에 청산비용, 청산 기간의 이자발생 등에 대한 검토와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

이춘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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