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실명을 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의사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망막박리증. 망막이 찢어져서 각막으로부터 분리된 틈으로 체액이 들어와 유리체가 모두 망가지는 병. 피곤한 일상의 끝에서 오른 눈에 커튼이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삼주 전 어느 날 새벽이었다. 오른쪽 시야의 아랫부분이 서서히 검어지더니 오후쯤 되자 삼분의 일정도가 보이지 않았다. 부리나케 병원 진료를 예약하고는 연구실에 출근하여 팔월 일정을 모두 취소하였다. 왠지 구월 개강에는 돌아갈 것이 확실하다는 듯이. 그리고는 유유히 의사를 만났던 것인데, 실명할 수도 있다니. 그러지 않으려면 당장 다음날 응급 수술을 받아야 한다. 아이 둘을 낳을 때도 수술이라고는 받아 본 적이 없던 나에게, 레지던트는 수술로 인한 최악의 부작용까지 주저리주저리 설명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의서에 사인을 하라고 종용하였다. 입원절차를 밟고 다음날 전신마취 수술을 하기까지 무슨 정신으로 버틴 것인지 지금 생각해보면 가물가물하다.

수술 직후 두 주간은 눈 안에 가득한 가스로 인해 세상과 차단된 느낌이었다. 앞은 보이지 않고 빛은 인공 유리체 안에서 산산조각 났다. 미칠 것 같은 답답증과 오심, 그리고는 시력이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심.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일단 너무나 빨리 돌아가던 세상이 멈추었다. 그리고는 ‘나’라는 것만이 덩그마니 남았다. 왼쪽 눈으로 겨우 생활을 할 수는 있었으나 눈으로 할 수 있었던 많은 일들과 담을 쌓아야 했다. 글을 읽고 쓸 수도 외출을 할 수도 없었다. 대신 얻은 것도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소리에 대한 감각이었다. 바빠지면서, 제대로 음악조차 감상할 기회가 없었다. 예전 소녀시절에는 간간이 밤늦은 시간 FM에 심취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나서는 가끔 티비를 보기는 했지만 라디오를 집중해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한 눈이 감기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와 진행자의 소근거림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종일 집안에 갇혀있던 나에게 유일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는 지인이나 친구들이 SNS로 보내주는 일상의 소식들. 왼쪽 눈으로 잠시 컨닝하는 바깥 세계는 황홀하였다. 다람쥐 쳇바퀴에서 뒤도 안돌아보고 질주하던 때는 결코 알 수 없었던 많은 감동이 새롭게 느껴졌다. 신기한 구름과 하늘, 노을, 그리고는 새벽빛을 깨고 피어난 예쁜 꽃봉오리들이 하나같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눈이 감기고서야 비로소 볼 수 있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절절히 감상할 수 있었다.

이제는 눈 안에 가득 찼던 가스가 빠져 나가면서 조금씩 그 틈새로 세상이 보인다. 조바심 나기도 설레기도 하지만 확실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는 다시 든 깨달음은, 내게 남은 시간들을 지금까지처럼은 쓰고 싶지 않다는 사실이다. 허상을 쫓기보다는 내게 소중한 것들을 위해 쓰고 싶다. 조금 더 예쁜 것, 조금 더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데, 느끼는 데에 시간을 쓰기에도 삶은 안타깝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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