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소득증대성장 정책을 두고 찬반양론이 뜨겁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50%아래로 떨어진 걸 보면 수정할 필요가 있다.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기에서 멈추고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 대통령 옆에서 보좌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문제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 임금제 등으로 인한 ‘고용 참사’와 관련해 책임자들에게 ‘직(職)을 걸라’고 엄명했다.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보고 한 말이다. 우리는 ‘직(職)을 건다’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보통 공무원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자신의 자리를 걸고 최선을 다한다’ 정도의 뜻인데 별로 감동은 없다. 그 말을 한 뒤 실제로 직(職)을 내놓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결국 ‘립 서비스’에도 모자란 쇼로 보인다.

당 태종 이세민은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자신을 여러 차례 위기에 내몰았던 위징(魏徵 580-643)을 중용했다. 위징은 이세민의 형이었던 황태자 이건성의 심복이었다. 당 태종의 신하가 된 위징은 황제에게 서슴없이 직언하고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위징은 하도 직언을 많이 해 당 태종도 질릴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황후에게 ‘그 노인네, 죽이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위징은 당 태종 보고 ‘욕심이 많고 사치스럽다’라고 말하는 등 300여 건 이상을 간언(諫言)했다.

당시 상황으로는 목숨이 백 개라도 버틸 수 없는 일이었지만 당태종은 참고 버텼다. 위징이 죽자 당 태종은 통곡하면서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면 잘잘못을 알 수 있는 법인데 이제 위징이 죽었으니 나는 거울을 잃었다’고 하였다.

직(職)을 건다는 것은 이 정도는 되어야 쓸 수 있는 말이다. 위징은 직을 넘어 목숨을 걸고 당 태종을 현군으로 만들었다. ‘정관(貞觀)의 치(治)’란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진짜로 직을 건 신하와 인내심을 가진 보스가 만든 합작품이다.

어디 중국뿐인가. 우리도 세종이란 불세출의 현군(賢君)이 있다. 직을 걸고 간언한 많은 신하들이 있었다. 황희, 허조, 맹사성 등 셀 수 없이 많다. 난세에는 훌륭한 신하가 없어서가 아니라 지도자가 맨 간신만 등용하여 그 꼴이 된다.

‘너도 맞고 너도 옳다’로 두루뭉술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 황희는 사실 까칠하고 임금에게 ‘아니 되옵니다’를 가장 많이 한 공무원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을 홀로 강력히 저지한 적이 수도 없이 많다.

거침없고 분명하게 주장하여 세종이 여러 번 곤욕을 치렀다. 그런 사람을 24년 간 정승으로 기용한 세종이기에 지금 성군이란 말을 듣는다.

먹고 사는 문제가 장난이 아니다. 대통령은 부하에게 직을 걸라고 말할 게 아니라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어차피 김동연과 장하성은 물과 불이다. 불화는 없다고 말하나 둘 중 하나는 틀리고 있음을 삼척동자도 안다. 김동연 부총리의 애매한 태도도 양다리 걸치기처럼 보인다.

‘배운 사람의 말은 그럴싸하나 잘 맞지 않고 어리석은 백성들 말이 꼭 적중한다’는 옛말이 있다. 어려운 경제용어와 이론을 늘어놓은들 국민들이 체감하는 현실이 아니면 아닌 것이다.

그냥 기다리라고 할 게 아니라 매듭을 지어야 한다. 지난 7일 북한 매체인 ‘우리민족끼리’에서 남조선 소득주도성장은 허황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누가 누구를 지적하나 싶다가도 실소가 난다.

문 대통령의 인기는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포옹했을 때 정점을 찍었으나 민생고가 깊어지자 땅으로 하강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어려움은 장관이나 참모가 할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섰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문 대통령의 최종 결정권한에 대해 말들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도 토론은 많이 했으나 최종 결정은 본인이 직접 했다. 한미 FTA, 이라크 파병, 제주 강정해군기지 설치 등 우리의 명운을 좌우할 현안은 대통령의 몫이다.

잘해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현실에서 통하지 않으니 문제다. 이제 대통령은 직(職)을 걸고라도 직접 나서 이 난국을 타개해주기 바란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학교 석좌교수, 전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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