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을 경영하는 장 사장은 꿈에 부풀었다. 그 꿈을 이룰만한 자신감이 있었다. 돼지갈비 등 대중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 구미에 맞게 제공하여 가게를 번창하게 만드는 경험과 비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장 사장이 음식점을 열기 위하여 물색한 곳은 지하철역이 인접해 있는 교통의 요지여서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주위에 주택들도 많이 있었다. 다만 그 음식점 후보지는 그야말로 앙상한 건물 골격만 있을 뿐이어서 현상대로는 영업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건물을 근본적으로 리모델링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돈을 투자해야만 가능한데 그 투자금은 나중에 건물주로부터 회수하기도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난감했다.

이에 장 사장은 임대인에게 위 시설투자금을 회수할 만큼 충분한 임대차 계약기간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임대인은 이를 받아 들였다. 다만 계약서에는 관행대로 계약기간을 쓰고 임차인이 요구한 기간을 보장하여 계약연장을 해 주겠다고 했다. 장 사장은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후 거금을 들여 내부공사를 마친 다음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였고 그 덕에 손님들도 많이 모여 들었다. 그야말로 박리다매 작전으로 음식은 정성들여 맛있게 하는 한편 가격은 저렴하게 책정해서 고객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 사장은 내용증명 우편 한 장을 받았다. 발신인은 생면부지의 사람이다. 그 내용은 자기가 건물을 새로 매입한 주인이니 점포를 비워달라는 것이었다.

장 사장은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당장 전 주인에게 연락해 봤으나 연락도 잘 안되고 중개사 사무실에 수소문해보니 영업장소 건물이 매도된 것은 사실이었다. 장 사장은 건물의 새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자 새 건물주는 임차인을 상대로 건물명도 소송을 제기해 왔다. 자기들도 많은 돈을 주고 매수하였는데 자기목적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손해가 많다는 것이다. 법정에서 쌍방 대리인들이 법리적 공방을 하였고 특히 상가 임대차 보호법 관련 주장을 적용해도 임차인 입장에서는 불리하기만 하였다. 그러던 중 임차인은 실질적인 새 건물주가 유명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임차인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해 보았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그 억울한 사연이 언론에 보도되는 지경에 이르자, 다행히도 당초 전 건물주가 약속했던 기간만큼 임대차기간을 인정해 주기로 하는 합의점을 찾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임차인 입장에서는 그 동안의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장기간 영업도 부실해져 손님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였던 것이다. 참으로 씁쓸한 사건이었다.

요즈음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궁중족발 망치사건은 위 사례보다도 더 비극적이다. 건물을 새로 매입한 임대인이 기존 임차인에게 종전 월세 297만에서 1200만원으로 4배를 올리게 되면서 갈등이 시작되어 급기야 건물주는 임차인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판결을 받은 다음 강제집행을 시도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그 동안 자신이 쏟아 부은 ‘궁중족발’ 음식점의 상권을 생각할 때 법도 보장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억울함에 분한 나머지 임대인을 향해 망치를 휘두르기에 이르렀고, 결국 형사사건으로 비화되어 1심에서 특수폭행죄로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 받게 되었다. 임차인과 임대인 사이의 파국에서 비롯된 안타까운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국회에서는 상가 임차인의 계약 갱신 청구권 기한을 기존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법안이 거세게 통과 압력을 받고 있고, 임대료 과다 인상, 임대인의 일방 계약해지 등 위험에서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 등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편, 필자는 반대의 입장인 열쇠 사건도 보았다. 유명 관광지 인근의 펜션사업 건물주는 임차인으로부터 임차 요청을 받았다. 그 임차기간에 관하여 관행대로 1년씩 계약 갱신해 나가자는 임대인의 말을 만류하고 임차인이 처음부터 5년으로 보장 약정하자고 강력 주장하는 바람에 계약서에 5년으로 명기하였다. 그런데, 임차인은 몇 달 동안 펜션영업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옆집에다 열쇠를 맡기고 그만 영업하겠다고 이야기하였다. 임대인으로서는 중도에 아무런 계약해지를 당할만한 사유가 없으므로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것도 결국 법정 소송으로 번지게 되었는데 문제는 아무도 영업하지 않은 기간의 임대료, 관리비 등의 손해를 누가 부담하느냐이다.

소송이나 분쟁이 발생하면, 쌍방은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법은 최소한의 규범을 정한 것이다. 또 법 규정은 사회 상황에 따라가는 속도가 느리고 모든 상황을 구체적·개별적으로 포섭하기 어렵다. 상가 임대차 보호법 개정을 통하여 불합리한 점은 개선해 나가야 하겠지만 그것이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상가 임대차 분쟁을 근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결국 계약 당사자 쌍방이 상대방의 입장을 바꾸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분쟁을 방지하기 위한 첩경일 것이다. 끝.

위철환 전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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