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물론 경기, 충남, 제주까지 교복 무상화가 전국적인 대세가 되었다. 초등학교는 교복을 입지 않으니 제외하고 중고등학교의 교복을 지방자치단체에서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교복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논의가 시작되면서 현금으로 줄 것인지, 아니면 현물로 줄 것인지에 대한 논쟁으로 그리고 대기업 제품인지 아니면 지방 중소기업 제품인지 등 다양한 부수적 쟁점들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싶다. 과연 교복을 무상으로 제공해야 하는가. 무상 교복이 우리 교육에 어떤 도움이 되며, 어떤 가치와 목적으로 이 정책을 추진하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교복의 무상제공을 주장하는 근거는 교육복지에서 시작한다. 중고생 학부모들은 무상으로 교복을 제공한다니 이를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상이라는 것은 결국 세금의 투입이고 전국적으로 상당한 금액의 세수가 투입되어야 한다. 당장 내년 무상교복 관련 경기도의 예산만 봐도 1인당 21만 원 정도로 책정하여 총액이 210억 원에 이른다.

성장이 빠른 중학교 과정의 학생들은 1학년에 제공한 교복이 당장 2학년만 되어도 맞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2학년 때 다시 교복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교복을 제공하기로 한 취지에 맞는 진정한 복지다.

그리고 교복을 한 벌만 주는 것도 복지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 두 벌은 줘야 돌아가면서 입을 수 있다. 흰 와이셔츠 또한 여러 벌 제공해야 한다. 한 벌만 덜렁 줘서는 생색내는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는 제공되는 교복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도대체 정책을 마련하면서 세금에 대한 걱정은 하고 있는 것인지, 현재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육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은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그리고 교육의 가치를 복지에 중심을 두어 과도하게 편향적인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지속적인 저출산율로 인해 우리나라의 학령인구는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이고, 대학 진학률도 낮아지고 있다. 인구 5천만의 국가에 대학이 300개가 넘는다는 것도 비정상적이고 대학 진학률이 80%를 초과한다는 것 또한 비정상적이다. 공부와 입신양명이 중요한 사회적 평가기준인 우리 문화는 좋은 대학을 나오는 것이 결혼하고 취업하는데 상당히 큰 장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표현이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물결은 화석연료 중심 산업혁명 시기의 대량의 균일화된 노동자를 육성하던 현재의 학교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미 선진국들은 강의실 없는 학교, 강의가 아닌 자기 주도적인 학습, 심지어 홈스쿨링을 포함한 학교에 대한 대안적 교육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교육의 주체, 방식, 내용이 완전히 새롭게 전환되고 있다. 과연 국가가 교육을 주도해야 하는지도 의문의 대상이다.

다시 교실로 가보자. 과거의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는 이미 무너졌다. 교사들은 성스러운 직업이 아니라 세속적인 직업의 하나로 만족하고, 학생들은 교사를 인생의 스승이기보다는 구속하고 통제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교사, 학생, 학부모 사이에 신뢰가 없다는 것이다.

당장 정치인과 교육 담당자들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교복이나 급식에 앞서 교실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불신의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대한 해결책의 마련이다.

교복과 급식의 문제는 교복을 입기 어렵고 급식비를 내기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택적으로 추진하면 된다. 국가의 책임은 모두를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맞게 대우하는 것이다. 중학교도 다니지 않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청소년들과의 형평성 문제는 고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는 많은 청소년들이 학교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대안을 찾게 될 것이다.

대학입시 제도의 변경이나 교복에 힘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중고등학교 시스템 전체에 대해 다시 논의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무상교복에 대해 다툴 시간에 미래 사회에 적합한 세대를 양성하기 위해 교육시스템을 어떻게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를 위해 우리 사회가 현 단계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지금의 교실로는 우리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교실이 필요 없는데 교복은 무슨 소용이겠는가.

류권홍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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