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여명 사망 참사 후 법 제정… 지역별 위원회 두고 정보 제공
불산 누출사고 20분만에 대피

미국 휴스턴 외곽에 있는 TPC의 석유화학 공장. 사진=AP/연합
미국 휴스턴 외곽에 있는 TPC의 석유화학 공장. 사진=AP/연합

 

④미국이 화학물질을 대하는 자세


화학물질 관련 조례가 지자체 단속 권한 한계 등으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시민사회의 협조로 지역내 화학물질을 관리하고 있어 모범 사례로 꼽힌다.

19일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등에 따르면 미국은 유해 화학물질 사고에 대비하고자 1986년 ‘응급계획 및 지역사회 알 권리 법’을 제정했다.

1984년 인도 보팔(Bhopal)시에 위치한 미국의 살충제 제조공장에서 맹독성 물질인 ‘메틸이소시안산(MIC)’이 누출돼 수십만 명이 인명피해를 입어서다.

사고 발생 2시간 동안 MIC가 36t가량 방출, 이로 인해 2천800여명이 사망하고 20만명이 실명 등 부상을 입었다.

MIC는 호흡을 통해 폐와 중추신경계에 악영향을 끼치지만, 해당 기업은 보유중인 화학물질을 공개하지 않아 주민들은 바람에 실린 MIC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들이마셨다.

이후 주민 알 권리 법을 제정한 미국은 각 지역에 ‘지역비상계획위원회(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위원회에는 공무원·경찰·소방·환경전문가·시민단체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며, 매년 비상 대응계획을 검토해 주민들에게 화학물질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특히 화학물질이 포함된 특정 50만개 제품 중 하나라도 생산하는 사업장은 위원회 요청에 따라 관련 물질에 대한 안전보건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그 결과 1년 뒤 텍사스 주에서 불산 24t가량이 누출됐지만, 20분 만에 주민대피가 이뤄졌고 사망자도 없었다.

대규모 재난을 겪으며 지역사회가 직접 참여해 화학물질 관리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수원시가 화학사고 대비 위원회를 구성하며 화학물질 관리 기반을 마련하고 있는 우수사례로 꼽힌다.

수원시 역시 2014년 영통구 원천리천에서 화학물질로 인해 물고기 1천여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이후 관련 제도의 필요성을 느끼고 2년 뒤 화학물질 조례를 제정했다.

이에 같은해 12월 ‘수원시 화학사고 관리 위원회’를 구성,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자 시민단체·기업·전문가를 포함시켰다.

특히 시는 삼성전자 등 기업도 위원회에 참여 시켰다. 갈등보다는 협의가 사고 대처에 용이해서다.

위원회는 1년에 2회씩 정기회의를 개최하고, 화학사고 발생 시에는 비상 소집을 하고 있다.

수원시 관계자는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조례 제정 및 위원회까지 꾸렸다”며 “미흡한 부분은 계속 보완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미국은 대규모 인명피해 이후 화학사고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졌다”며 “우리도 각 지역민이 스스로 화학물질을 관리할 수 있는 기류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성욱·신경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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