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체제 여정의 중요 변곡점으로 꼽힌 문재인 대통령의 가을 평양 방북 일정이 20일 마무리됐다.

문 대통령 취임 후 첫 방북이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세 번째 정상회담이며, 지난 5월26일 판문점회담 이후 115일만의 남북정상 만남으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비핵화 등 궁극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의미 있는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다.

특히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지난 18일부터 2박3일간의 평양 정상회담 끝에 ‘핵 없는 한반도’원칙과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 등을 명문화한 ‘9월 평양공동선언’을 채택했다. 평양공동선언은 당초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내용으로 평가받으면서 교착상태였던 북미 간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문 대통령은 이번 평양 방문에서 비핵화·남북관계 개선·군사긴장 및 전쟁위협 종식이라는 3대 의제 합의를 이끌어냈다.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미간 중재역과 함께 육·해·공군의 무력사용 일체 금지 등도 합의했다.



◇‘핵없는 한반도’원칙, 비핵화 구체방안 선언문 합의=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공항 환영행사와 공동 카퍼레이드 등을 가진 뒤 첫날 오후부터 곧바로 정상회담에 돌입했다.

두 정상이 논의할 과제는 비핵화·남북관계 개선·군사긴장 및 전쟁위협 종식이라는 3대 의제다.

첫날인 18일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2시간 가량 회담을 했으나 별도의 합의사항 발표는 하지 않았다. 이틀째인 19일에는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을 직접 찾아가 65분간 회담했다. 남북 정상간 총 185분간 대좌 끝에 남북 정상은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두 정상은 최고 난제인 비핵화 방안과 관련,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뤄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명시했다. 실천방안으로 북측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했다.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도 표명했다.

군사긴장 완화에 합의한 것도 성과다. 청와대는 실질적 종전선언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어떠한 경우라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교류와 협력을 더욱 증대시키고, 민족 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들을 강구해나가기로 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로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다. 김 위원장의 답방이 이뤄지면 분단 후 첫 북한 최고지도자의 한국 방문이다.

양 정상간 신뢰관계도 한층 강화됐다.

첫날 김 위원장이 공항에서 직접 문 대통령을 영접하는 파격 행보를 보였고, 문 대통령은 19일 5·1 경기장에서 15만명의 북한 주민들 앞에서 처음으로 연설했다. 20일에는 김 위원장과 백두산에 함께 오르기도 했다.

◇ 교착상태 북미대화 중재역…보유핵 처리 등 숙제= 평양 남북정상회담 성과 중 하나는 비핵화를 고리로 한 북미대화 중재다.

남북 정상은 평양 공동선언에서 북측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했다.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 조처를 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도 표명했다.

김 위원장은 공동선언 서명 직후 육성을 통해 최초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며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즉각 환영했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의 실무회담 계획도 발표했다.

북미대화가 종전선언과 핵 신고 등을 둘러싸고 교착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중재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고, 북미대화 재개를 이끌어냈다.

남북대화 사상 남북 정상이 비핵화의 실천적 방안을 논의한 첫사례라는 점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핵을 포함한 안보 문제는 미국과 논의하고 남북 간에는 교류·협력을 논의한다는 북한의 ‘프레임’에서 남북이 비핵화 방안을 실질적으로 논의한 것이다.

비핵화와 관련해 합의한 실질적 내용도 의미있는 평가로 꼽힌다.

반면 비핵화 성과를 평가하기엔 이르다는 시각도 나온다.

영변 핵시설 영구 폐쇄는 성과지만 북한의 현재 핵(보유핵)이나 핵 리스트 신고와 관련한 명시적 약속을 받지 못했다. 영변 밖 비밀 우라늄농축시설을 함께 폐기하겠다는 약속도 없어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있다.

◇ 사실상 남북 불가침 합의…전쟁위험 실질적 해소=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는 사실상 불가침 선언이라는 평가다.

양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분단 이후 처음으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군사분야 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서 1조는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고 명시했다.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적대행위 금지 완충지대·구역 설정, 비무장지대(DMZ)의 실질적 비무장화와 평화적 이용, 서해 평화수역 조성 등의 군사적 조치 등이 포함됐다.

지상에선 군사분계선(MDL)을 기점으로 남북 각각 5㎞ 구간이 적대행위 중단구역으로 설정됐다. 완충지대에서는 포병 사격과 연대급 이상 부대의 야외기동훈련이 전면 중지된다.

해상 적대행위 중단 구간의 남북 길이는 동해 80㎞, 서해 135㎞에 달한다.

특히 서해에선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북도서뿐 아니라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리는 북방한계선(NLL)도 이 완충구역에 들어갔다.

공중 비행금지구역의 경우 서부전선은 MDL 기점으로 남북 각 10~20㎞, 동부전선은 각 40㎞ 구역으로 설정됐다. 지금보다 최대 5배가량 후방으로 확대됐다.

DMZ의 평화지대화를 위한 GP 시범철수와 DMZ 공동유해발굴, JSA 비무장화 등에도 합의했다. 군사분계선(MDL) 1km 이내 근접해 있는 남북 GP 각각 11개를 철수하고, JSA 비무장화 및 자유왕래를 위한 지뢰제거를 하기로 했다.

다만 미국 내에선 핵 목록 신고 등 더 분명한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고 있어 연내 종전선언까지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핵무기 없는 한반도’일치…주변국 긍정= 북한 김 위원장의 비핵화 방안에 일단 미국 측은 긍정적인 반응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은 19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참관 아래 영변의 모든 시설을 영구히 해체하는 것을 포함,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재확인한 것을 환영한다”며 “미국은 북미 관계를 전환하기 위한 협상에 즉각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북미 협상을 위해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의 북미외교장관회담 뿐 아니라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북한 대표단을 초청했다.

지난달 27일로 예정됐던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이 전격 취소된 이후 20여일만에 다시 대화의 모멘텀을 확보했다.

북미 양측의 대화가 재개되면 북한의 파격적인 조치가 제의되면 미국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북미 양측이 협상을 재개하면 2021년 1월이라는 목표시한에 맞춰 비핵화와 양국 간 관계개선 및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집중 논의가 이뤄지고, 지난 6월에 이어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간으성까지 제기된다.

북미관계가 정상화 궤도에 진입하면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도 적극적으로 북한과 협상에 나서면서 동북아시아 정세가 급변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해 강경일변도였던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7일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보다 북한과의 대화를 서두르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남북 정상의 평양공동선언에 반색하고 나섰고, 러시아도 평양공동선언을 반기고 있다.

김재득·라다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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