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기도 힘들만치 호된 무더위를 지나와서 일까, 올 가을은 유난히 청명한 듯하다. 바다 같은 하늘과 맑고 시원한 바람이 스치는 어느 날, 한 공원에서 D를 만났다. 계절마다 감동을 주는 자연은 산과 들뿐만 아니라 도시 한 복판의 공원에도 어느새 가을 정취로 물씬 채웠다. 우듬지서부터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나뭇가지 사이로 구름을 담아 숲은 아름다운 생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D는 O나라에서 온 여성결혼이민자로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고 공장에서 일을 하며 살고 있는 슈퍼우먼이다. 늘씬한 키에 하얀 피부, 특히 춤을 잘 추고 노래까지도 잘해 여러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고혹적인 여인이다.

10년 전, 그녀가 깊은 한숨을 쉬며 우리 상담센터를 찾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며 매우 안정되고 즐거운 일상을 보내고 있던 중, 자신의 나라에 사업차 와 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고 한다. 그의 푸근한 인상에 마음을 빼앗겨 결혼을 하고 남편의 나라인 대한민국에 와 살게 됐다.

그러나 당시 그녀는 시부모님과 종교문제로 많은 갈등을 겪었다. 유한한 삶을 부여받은 인간은 슬픈 운명과 고통을 겪으면서 절대적인 존재나 힘에 의지하고 싶은 나약한 마음에 종교를 찾기도 할 것이다. 사실종교란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적 체계를 일컫는다. 그래서 종교는 문화의 뿌리이고, 종교는 인간과 관련된 존재의 우주적 질서이며, 으뜸 종(宗)자에 가르칠 교(敎)자, 즉 으뜸의 가르침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중요한 의문들을 갖기도 한다. 따라서 종교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고, 그 종교의 자유를 추구하기도 하나, D의 친정에서부터 지켜온 종교는 절대적이어서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 아파트 위층에 살고 계시는 시부모님은 일요일 아침이면 벨을 누르고 함께 종교생활에 참여해 줄 것을 간청한다고 했다. 너무나 어려운 일이어서 처음에는 계속 핑계를 대고 모면했으나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어 상담실을 찾아 왔던 것이다.

그녀에게 개종은 생각만 해도 두려운 것이어서 신혼의 달콤함은 물론 임신 중 태교도 신경 못쓸 지경이라고 하였다. 왜 시부모님들은 그토록 개종을 강권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심지어는 벨 소리만 들어도 시부모님 오시는가 싶어 가슴이 쿵 내려 안는다고 했다. 그녀의 남편은 그냥 대수롭지 않게 가지 않겠다고 하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만 D는 막상 닥치면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시부모님이 따르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역시 인내하기 힘든 사항이라고 하였다.

그런 그녀에게 만약 아기가 태어나면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조금의 방설임도 없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으로 다 채워주고 싶다고 하였다. 바로 시부모님도 그런 마음에서가 아니었을 까라고 말해주었다. 서로가 이해의 안경을 쓰고 마주 바라보면 쉽사리 소통이 가능한데 오직 자신만의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는 편견에서 갈등의 골은 깊어지는 것이었다. 그 분들은 세상에서 자신이 믿는 종교가 가장 옳다고 확신하여 자식에게도 주고 싶어서 일 것이라고 하였다. 그 후, 그 시부모님도 만나 여러 차례 가족상담을 진행하였다. 그분들 역시 선한 부모의 눈빛으로 며느리를 이해하려 애썼으나 시아버님이 그 종교의 지도자이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했다. 이 가족들은 이제는 가족치료를 통해 상호이해와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이제 그녀는 아들을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어, 이토록 눈부신 가을날, 내게 맛난 점심을 대접해 주었다.

어떤 부모든 자식에 대한 사랑은 무한하다. 부모들은 왜 자녀들에게 지극한 애정을 쏟을까. 자식들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수천 개의 바람소리처럼 뇌 안의 갈라닌(galanin), 사랑의 신경세포를 생성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서 D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깊고 풍성한 시부모님의 자식가족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앞이 보이지 않던 종교적인 갈등이 조끔씩 해소되었다. 고향 하늘에 뜬 한가위 보름달처럼, 노랗게 달빛을 닮은 아름다운 밤의 달맞이꽃처럼 서로에 대한 한 움큼 사랑이 이 가족들을 조화와 화목의 길로 이끌러 준 것이리라.

서종남 한국다문화교육상담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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