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6월 29일 고종 황제는 특별 조령(詔令)을 내렸다. 외세가 한반도에 영향력을 주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고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군제 개혁을 단행하고 각국 대원수의 예에 따라 직접 육군과 해군을 통솔하겠다는 것이었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한 지 8개월 만에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만이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7월 2일에는 육군 10개 대대를 증설하고 조만간 해군을 편성할 것이라는 조령을 발표했다. 대한제국의 위상에 걸 맞는 군사력 강화를 천명한 것이다. 사실 고종은 갑오개혁 시기 일본군에 의한 경복궁 점령과 명성황후 시해 등의 사건을 거치면서 엄청난 모멸감을 겪었다. 말이 국왕이지 자신을 보호해 줄 군인들은 거의 없었다. 경복궁을 수비하던 시위대(侍衛隊)는 일본군과 연대해 왕비를 죽이는데 일조했다. 조선의 군대가 외세와 한편이 되었으니 나라를 지키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런 비극적 상황을 몸으로 겪었던 고종은 강한 군사력만이 자신과 대한제국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대한제국의 국방 강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식 군대의 훈련과 무기의 구입이 시급했다. 고종은 대한제국 선포 이전에 러시아 공사관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의지가 남달랐다. 외세에 힘을 빌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당시 고종은 러시아가 대한제국을 보호해 줄 것이라 생각해 러시아로부터 군사교관을 초빙, 친위대·시위대·호위대 등의 중앙군을 중점적으로 육성했다. 그러나 러시아 군사교관들은 한국 군인들이 소총을 제대로 다룰 줄 몰랐고, 군장을 휴대하는 법도 익히지 못했으며, 심지어 제식동작도 제대로 못한다고 혹평했다. 사실 이러한 혹평은 우리 군사들의 무능 때문만은 아니었다. 러시아 교관들이 모두 러시아어로만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우리 군인들은 통 이해를 할 수 없었고 훈련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궁내부 특진관 민영준은 “외국 고문관에 의한 교육훈련은 ‘손과 발을 남에게 빌려주는 행위’이므로 구령의 우리말 통일, 각국 교범의 번역, 내국인에 의한 훈련통제를 실현해 군대 운용의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군사업무의 실무자였던 군부협판 주석면은 “무관학교 설치를 통해 문무를 겸비한 사관을 양성해야 하며, 지방 진위대 설치를 통해 급한 사변에 대처하고 도적 부류를 진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군사력 강화에 대한 조정 관료들의 의견을 듣던 고종은 군 수뇌부였던 부장과 참장들에게 지시해 1899년 1월부터 매달 세 차례 군국사무를 논하게 했고, 그 결과 다양한 안건이 도출됐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다른 나라 황제가 군복을 입은 것처럼 고종이 신식 군복을 입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이미 단발을 하기는 했지만 원래 고종은 익선관에 곤룡포를 입은 전형적인 조선의 국왕 모습이었다. 선대 국왕인 정조가 군복에 전립을 쓴 모습으로 행차와 군사훈련을 한 적이 있지만, 고종은 그런 복장을 한 적이 없었다. 고종이 군복을 입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대한 제국의 수장으로서 군인들에게 위엄을 보이고, 동시에 군인들이 자부심을 갖고 군사훈련에 충실할 것이라는 각료들의 제안을 고종은 적극 수용했다. 이와 함께 고종은 1901년 이후 군부 예산을 대폭 증가시켰다. 1900년 163만7천704원에서 1901년 359만4천911원으로 2배 이상 증액한 것이다. 이는 국가 예산의 35% 이상 되는 비용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고종은 1900년 7월 프랑스와 그라총 1만 정과 탄약 3만 발 등의 매매계약을 은밀하게 체결했다. 하지만 이러한 무기 구매계획은 안타깝게도 일본 정부에 알려지게 됐고, 결국 무기 구입은 실패하게 됐다. 더구나 1907년 고종이 키운 군대는 일본에 의해 해산됐고, 대한제국은 1910년 패망하고 만다.

지난 10월 1일은 ‘제 70주년 국군의 날’이었다. 눈에 띄는 점은 그동안 무기체계 등을 선보이는 시가지 퍼레이드나 열병식 없이 간소하게 치러졌으며, 장병들의 환호 속에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렇게 바뀐 모습에 걱정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국군의 날은 장병이 주인이 되는 날이어야 하고, 국민들은 행사를 준비하는 사병들의 고충을 생각해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렇게 변화된 정책에 군인들의 사기가 올라가고, 과학적 무기 체계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군대로 거듭나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지켜주길 바란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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