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과 제갈공명은 모두 하나같이 역사적으로 기록될 만한 뛰어난 전술가요 전략가였다. 이 두 사람은 똑같이 직접 전투 현장에서 진두지휘를 한 사령관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제갈공명은 날씨를 전술적으로 이용할 줄 알았던데 반해 나폴레옹은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과는 나폴레옹은 날씨로 하여 패배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고 제갈공명은 날씨를 이용하여 연전연승 할 수 있었다.

“러시아에는 믿을만한 장군 둘이 있다”는 말이 있다. 1월과 2월의 동장군(冬將軍)얘기다. 그러나 어찌 동장군뿐이겠는가! 여름장군도 있다. 세계 제국 건설의 꿈에 부풀어 있던 나폴레옹은 이제 제국건설의 첫번째 행보로 러시아를 택했다. 26살의 나이로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로 진격하기 시작한 때는 1812년 6월이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모스크바를 점령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의 겨울이 얼마나 혹독한가는 알았어도 그 여름이 살인적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모스크바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러시아 여름의 태양은 온 천지의 생명체를 모두 불태워 버릴 듯이 작열(灼熱)하고 있었다. 숨까지 막힐 정도로 더위에 지친 프랑스 군대는 말라버린 대지위에서 물 한 방울 찾아 마실 곳 한군데 찾을 수가 없었다. 마차바퀴에 잠시 고여 있는 말 오줌까지도 다투어 가며 마셔야만 했다. 병사들은 헬멧을 벗어 집어 던졌고 윗저고리도 벗었다. 먼지 풀풀 나는 자갈밭 도로에 구두는 이제 해져 더 이상 발에 꿰일 수조차 없이 닳았고 병사들은 탈수증에 시달렸다. 두 달이 되도록 프랑스 군대는 싸움한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이미 나폴레옹 군사는 10만명을 잃었다. 러시아 군대는 프랑스 군대를 여름장군에 맡겨 놓고 후퇴만을 거듭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서 프랑스 군대는 천신만고 끝에 모스크바에 닿았다. 9월이었다. 벼르고 벼르면서 도착한 모스크바에는 적군도 약탈할 여인도 마실 물조차도 없는 텅 빈 유령의 도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도시전체를 모조리 파괴하고 불태우면서 후퇴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기대가 일시에 무너지는 허탈감 속에서 나폴레옹이 퇴각명령을 내렸을 때에는 이미 동장군이 대지를 냉동시키고 있을 즈음이었다.

병사들은 지난여름 더위에 못 이겨 옷과 헬멧까지 모조리 벗어 버린 것을 후회하면서 하나하나 죽어 갔다. 60만 명의 병사 중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는 고작 3만명. 파리로 입성한 병사는 8천명에 불과하였다. 그해 12월의 일이었다. 전투 한번 제대로 치러보지 못하고 오직 날씨와 싸우다 죽은 전쟁이었다.

이에 비해 제갈공명은 어떠한가. 모든 자연현상을 무기로 활용할 줄 아는 천재였다. 바람도 안개도 그에게는 무기였다. 오나라의 주유가 제갈량을 죽일 속셈으로 열흘 안으로 화살 10만개를 만들도록 명령한다. 적벽대전 때의 얘기다. 제갈량은 열흘은 너무 길다고 하면서 오히려 3일의 빌미를 달라고 역(逆)제의를 한다. 그 3일 뒤가 바로 안개 낄 날임을 예견한 것이다. 노숙의 도움을 얻어 안개 낀 날 새벽 20척의 배 양쪽에 볏단 천여개를 세워 놓고 북을 치기 시작했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들려오는 북소리에 놀란 조조군사들은 무조건하고 소리 나는 곳을 향해 무수히 활을 쏘아 댔다. 적의 활이 모두 하나같이 볏단에 꽂혔다. 10만개의 화살을 힘 하나 안 드리고 만들어 냈던 것이다. 초선차전(草船借箭). 즉 볏단 실은 배를 이용해 화살을 빌렸다는 얘기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화살이 아니라 안개였다.

주유와 제갈량이 함께 힘을 모아 20만 조조군사를 화공(火攻)으로 무찔러 전멸시킨 것도 화공전략이 뛰어 나서라기보다는 한겨울의 강바람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는 데에 더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서북풍에 몸살을 앓고 있는 양자강의 바람도 어느 날 하루 이틀은 주기적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제갈량만이 유일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동남풍을 이용해 화공(火攻)을 썼다는 얘기는 비록 그것이 소설 속에서 나오는 얘기지만 기상이 전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높은가를 인식하기에는 결코 허황된 얘기가 아니라 할 것이다.

기상이변에 대처해 나가는 국가적 전략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제기되는 연유다. 대단히 절박하고 심각하다. 국제정치 기상도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김중위 전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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