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펑더화이에 대하여 쓰다

펑더화이│앨피│490페이지



이책은 우리나라에서는 팽덕회(彭德懷)로 알려진 펑더화이가 직접 쓴 자술서라는 것이다. 자서전이 아닌 ‘자술서’다. 어떤 사건에 관해 본인이 겪은 바를 직접 진술했다는 말이다. 펑더화이라는 중국 공산혁명의 영웅과 자술서의 역설적인 조합이 이 책의 묘미이자 가치라 할 수 있다.

대장정과 국공내전을 승리로 이끌고 한국전쟁의 판세마저 뒤집은 중화인민공화국 원수로 평생 마오쩌둥 곁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도맡아 완수했던 펑더화이는, 1950년대 후반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중국 경제가 파탄나고 수천만 명이 아사하는 참사를 겪는 상황에서 마오쩌둥에게 직언을 했다가 반당집단으로 몰려 국방부장직에서 해임당했다. 그리고 몇 년 후인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홍위병에게 붙잡혀 베이징으로 압송되어 온갖 고초를 겪는다. 이 책은 ‘우경 기회주의, 반당·반사회주의’라는 억울한 누명을 쓴 직후인 1962년 그가 당 중앙과 마오쩌둥에게 쓴 8만 자의 편지와, 이후 문화대혁명 기간에 특별심사조에게 심문을 받으며 3차에 걸쳐 작성한 장문의 이력자료 등을 바탕으로 펑더화이라는 인간이 어떻게 처절한 역경을 딛고 혁명을 완수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중국혁명에 관한 희귀한 자료이다.

이 책의 내용은 건조할 정도로 담백하다. 어떤 과장이나 자랑도 없다. 심문 과정에서 ‘공로를 써서는 안 되며 잘못을 반성하는 취지로’ 장문의 생애 이력을 거듭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빛나는 이력도, 조금의 과장도 없이 본인의 삶을 담담하게 기술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악명을 떨친 홍위병들의 심문은 황당할 정도로 모욕적이었다. 펑더화이는 혁명가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기본 자질마저 의심받았다. 그러나 심문조의 악랄한 모욕과 치욕적인 강압도 펑더화이라는 인간이 지닌 기개를 꺾지 못했다. 펑더화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책을 읽어 보면 알 수 있지만, 펑더화이는 안타까울 정도로 담백하고 강직한 사람이다. 펑더화이의 기억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지는 중국 공산혁명의 큰 그림과 더불어, 어떤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한 인간의 처절한 내적 투쟁이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묘미를 제공한다.

백창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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