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민주주의를 외치며 지방자치제가 야심차게 부활한 지 벌써 27년이다.

사람으로 치면 청년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아직도 유아기처럼 중앙정부의 간섭과 통제를 받고 있다. 국가 대 지방사무의 비율은 7:3이며, 국세 대 지방세의 비율은 8:2에 머물러 있는 허울뿐인 지방정부인 것이다.

더욱이 행정안전부가 이달 초 입법예고까지 마친 ‘지방자치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은 기초의회의 권한 침해로 인해 기초자치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 개정안에는 국가 및 시·도의 위임·위탁사무를 처리하는 기초자치단체에 대해 광역의회가 행정사무감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위임·위탁사무에 대한 감사 권한은 기초의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역의회에 감사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심각한 행정손실을 야기하는 것이자 지방분권을 역행하는 것이다.

분명 문재인 정부에서는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풀뿌리 민주주의 확립을 통한 국가 경쟁력 제고를 내세웠다. 최근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에서도 ‘주민과 함께하는 정부, 다양성이 꽃피는 지역, 새로움이 넘치는 사회’를 주제로『자치분권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지방분권을 향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은 스스로 자신의 삶의 바꾸는 주민 주권을 실현하고 지역의 문제를 지방정부 책임 하에 해결하기를 꿈꾼다. 자치분권을 바탕으로 국민이 주인이고 지역이 국가 경쟁력을 견인하는 지방자치의 실현이 시대의 숙명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허울뿐인 지방분권을 버리고 진정한 지방분권의 시대가 오는 것인가 기대해 보지만 정부의 추진 정책을 보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방자치분권 시대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헌법 개정이다.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를 뒷받침하는 디딤돌이 되기보다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간의 사회적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제117조 및 제118조 단 2개의 조문에서만 지방자치를 선언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방자치에 필요한 법적 뒷받침이 충분치 못한 현 상황에서는 지방의 특색에 맞는 정책을 펼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최고법인 헌법에 실질적인 지방자치를 분명히 규정하고 지방분권형 국가를 확고히 정립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변경하고 중앙정부와 수평적 관계를 보장하며 지방정부에 자치행정권·자치입법권·자치재정권의 자주권을 부여하는 것이 지방분권의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

아울러 지방정부에 책임과 권한을 대폭 이양함과 동시에 권력이 남용되지 않도록 지방의회의 견제와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지방의회의 인사권 독립, 정책지원 전문 인력 도입, 자치 입법권 및 예산 편성권 등을 보장하여 자치분권의 양대 축인 지방의회와 지방정부 간 수평적 분권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회혁신의 시작이자 국가 발전의 초석이다.

진정한 지방자치시대가 도래한다면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로 지역 맞춤형 복지 사회 구현이 가능해 질 것이다. 주민의 복지수요가 나날이 다양해짐에 따라 지역 상황과 대상자에 적합한 복지 사업을 신속하게 발굴 및 지원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중앙정부의 복지사업은 대규모 예산이 소요됨에도 재정보전 대책에 대한 재정부담 주체와의 협의 절차가 없으며, 복지계층에 시기적절하게 대응하기에 어렵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현장의 목소리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을 수 있은 곳은 지방정부이다. 지역 특성을 반영하여 맞춤형 복지 시책이 추진된다면 주민의 삶의 질 개선은 물론 지역 경쟁력 강화를 통한 국가 균형 발전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세계화 시대에는 국경을 넘어 지방과 지방이 경쟁을 한다. 우리나라의 현재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에 묶인 족쇄를 풀어야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혁신을 통한 새로운 국가의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다.

진정한 지방자치시대로 나아가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따르겠지만 중앙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시민 모두가 지방분권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협력하여 풀뿌리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하루 빨리 분권과 자치가 꽃피우는 사회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문석 성남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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