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TV 시청 중 이혼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보았다. 그 여성의 소망은 ‘의리 있는 사랑’을 하는 것이란다. 다른 내용은 크게 중요하지도 않고 기억에 남지도 않지만 ‘의리 있는 사랑’이란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의리 있는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의리’는 무엇일까? 비단 특정 사람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필자도 요즘 ‘의리’ 있는 인간관계란 무엇인지 고심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의리는 까만 양복을 입은 우락부락한 남성이 주먹을 쥐고 ‘으리! 의리!’를 큰 소리로 외치며 배신자를 일망타진하거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의리라는 이름하에 맹목적인 충성을 보이는 것으로 상기된다. 아마도 수많은 매스미디어가 우리에게 심어준 이미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 유교적 전통에 입각한 의리가 아니라 일제의 영향 속에 변질된 모습이라고 한다. 흔히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예의’란 예법과 의리라는 가치기준의 두 축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며 ‘의리를 저버리는 행위’는 특정한 누군가를 배신하는 행위가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와 사회적 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서 이해(利害)에 대한 반대 개념이라는 것이다.

또한 의리는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강직한 정신이고,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는 점. 뇌물을 준 사람에게 신용을 잘 지켜서 잘 봐 주는 것이 의리 있는 행위가 아니라 뇌물을 단호하게 거절 할 수 있는 것이 의리 있는 행위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앞서 나온 말들과 의리(義理)의 사전적 정의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를 살펴볼 때 필자는 의리를 ‘상호신뢰’ ‘행동’ ‘책임감’ 이 세 가지 조건의 합으로 정의하고 싶다.

더 쉽게 말하면, 의리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서로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신뢰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 따라야 한다. 마음으로든 물질로든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하고, 어느 한쪽의 노력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를 소중히 하고 관계를 지속해나가기 위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현대 사회의 문제점인 이혼, 자살과 살인 등의 생명경시 풍조 등은 이 세 가지 요소의 결핍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앞으로는 의리를 바탕으로 이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논어에 ‘군자는 신뢰받은 후에 백성을 노고롭게 하는 것이다. 신뢰받지 못하면 백성들은 임금이 자신을 학대한다고 여긴다. 윗사람에게도 신뢰받고 난 뒤에야 간언하는 것이다. 신뢰 없는 상황에서 간언하면 자기를 비방한다고 여긴다’는 구절이 있다. 의리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을 신뢰하고 상대방이 나를 신뢰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진정한 인간관계에서 서열은 없다. 나이가 어린 사람,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 덜 가진 사람이 무조건 충성 하고 손해를 당연시하는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 나만 대접받기를 원하는 것은 의리가 아니다.필자의 해석이 ‘의리 있는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정답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사랑의 진가는 두 사람이 완벽한 하나가 될 때가 아니라 두 사람이 완벽한 하나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발휘될 수 있는 것처럼 의리 있는 사랑은 상대방을 신뢰하고, 나와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며, 이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하는 ‘과정’ 자체가 아닐까 한다.

나는 가족, 동료, 주변 사람에게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으리으리하게 의리 있는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조성철 한국사회복지공제회 명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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