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60) ㈜에이치이비 대표는 외환위기(1998년) 시절 중고 반도체 제조장비를 수리·보수해 공장에 설계·설치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경제 불황에도 사업은 꾸준히 성장하며 연 매출 100억 원을 달성, 궤도에 오르는 듯했다. 머지않아 김 대표는 70억 원의 미수금을 남긴 채 사업을 접었다.



◇ 15년 신뢰, 한순간에 무너지다= 반도체업계는 무엇보다 타이밍과 속도가 생명이다. 기술개발이 빠르게 이뤄지기 때문.

김 대표는 “반도체 업종은 시기에 맞는 생산라인을 갖추기 위해 계약을 구두로 진행, 결제와 행정에 소모되는 시간을 줄이려는 관행이 있었다”고 돌이켰다.

구두로 진행한 계약에서 결국 탈이 났다. 15년간 거래했던 업체가 외국계 기업에 인수되면서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한 것이다.

“구두계약이 위험한 것을 누가 모르나요. 한 달이 급한 우리들은 알면서도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폐업을 막기 위해 빌렸던 연대보증 5억 원이 김 대표를 조여 왔다. 빚에서 벗어나려고 개인회생을 신청했지만 대출은 물론, 금융 거래도 할 수 없었다.

김 대표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많은 창업자들이 이 연대보증 때문에 재기하지 못하고 주저앉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 빚에서 빛으로= 김 대표는 재기를 꿈꿨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사업 아이템을 만났고, 자금도 모았다. 또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진행하는 재창업자를 위한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특히 해당 프로그램의 지원으로 개인회생 절차로 인해 제한되던 금융활동이 가능해졌고, 금융거래 물꼬가 트이면서 재기에 탄력이 붙었다.

김 대표는 “이전의 100억 원 매출까지는 아니지만 20억 원 수준의 매출을 올리며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에이치이비의 주력제품인 LED조명은 반도체 제조 기술 중 기본 원리에서 파생된 기술이다. 효율이 높은 조선소, 경기장 등에서 쓰이는 조명을 제외하고 현재 LED 시중 제품의 80%가 중국산이다. 그나마 KC인증을 비롯해 아직 안정성에서는 중국제품보다 한국제품이 우위를 지킨다는 게 위안이지만, 가격경쟁력으로는 상대할 수가 없다.

김 대표는 “중국제품보다 싸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영업과 유통과정에서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소기업의 경우 판로가 인터넷 판매, 마트, 전문상가 등으로 한정적인데, 이마저도 소규모 기업이나 신생기업들은 인터넷 판매를 제외하고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 “중국과의 경쟁은 중소기업의 숙명”= 결국 고정적인 생산단가와 달리 최종소매가격은 유통채널에 달렸다는 얘기다. 특히 조명 관련 유통업계는 품질보다 가격에 민감한 탓에 중국제품과 승부를 겨루기가 더욱 어렵다는 것.

그는 “영업과 판로분야로 조금만 더 지원해 준다면 성장할 수 있는 기업들이 많을 것”이라며 “특히 5년이 넘어 자리를 잡은 기업들에게 두 번째 디딤돌로 이런 도움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표가 ‘조명백화점’ 건립을 꿈꾸는 까닭이다. 대형유통업체처럼 커다란 창고형태로 건물을 짓고, 중소기업들이 직접 입점해 판매할 수 있는 새로운 유통망이다.

그는 “우리 중소기업 제품 간의 품질을 소비자가 직접 비교하고 평가할 수 있는 겨룸의 기회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안형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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