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선운사와 인촌 조부 김요협 묘
 

가을 단풍이 고운 선운사는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500(선운사로 250)에 있다. 뒷산은 선운산인데 옛 이름은 도솔산이다. 도솔천(兜率天)은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에서 12만 유순(由旬)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한다. 유순이란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로 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인 12~15km 정도의 거리다. 그곳은 미륵보살이 사는 정토로 더없이 안락하고 편안하며 아무 걱정이 없는 곳이란 뜻을 담고 있다. 그러기에 선운사는 도시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기운을 채우기에 좋은 곳이다.

일주문을 지나 계곡을 따라 가다보면 물가에 박힌 바위를 볼 수 있다. 일반인들은 무심하게 지나치겠지만 풍수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다. 풍수는 산과 물이 어울려 만들어 내는 땅의 이치를 설명하는 학문이다. 산은 정(靜)한 것으로 음, 물은 동(動)한 것으로 양으로 본다. 좋은 땅은 산과 물이 음양조화를 잘 이룬 곳이다. 이때 산과 물은 완만하고 느려야 한다. 만약 산이 가파르고 물이 빠르게 흐르는 곳은 발전하기 어렵다.

물이 천천히 흐르기 위해서는 땅이 평평하거나 물가에 바위가 박혀 있어야 한다. 이를 수구사(水口砂)라고 하는데 물의 유속을 느리게 하고 일정한 수량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물가에 수구사가 있으면 그 위쪽에는 좋은 땅이 있음을 암시한다. 수구사가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으면 더욱 귀하다. 선운사 계곡에는 거북과 뱀 머리모양의 바위가 상하로 엇갈려 박혀 있다. 수구사중에서 제일 좋다는 귀사(龜蛇) 한문이다. 선운사가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창건되어 1천4백 년 동안 유지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현재는 선운사의 승려 수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89개의 암자와 189개의 요사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었다. 선운사 뒤쪽 현무는 선운산(334.7m), 좌측 청룡은 경수산(445.2m), 우측 백호는 개이빨산(346.6m)·청룡산(314.9m)·비학산(308.4m), 앞의 주작은 노적봉·인경봉·구황봉(298m)·형제봉이다. 이들 산들이 원을 그리듯 서로 이어져 보국을 형성하였다. 산은 높지 않지만 기암괴석이 많고 계곡물이 맑고 풍부해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리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대웅전이 맥의 중앙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앞의 안산도 정면에서 벗어나 있다. 맥 자리에서 보면 삼각형으로 귀하게 생긴 산이 정면으로 향한다. 이를 안산으로 취해 대웅전을 배치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향을 정할 때 앞산을 정면으로 향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잘못이다. 풍수는 정면에서 산의 기운을 받는 것이다. 사람도 상대방을 똑바로 마주보는 것이 당당하다. 상대방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 옆을 보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거나 자신감이 없는 경우다. 자연도 똑같은 이치다.

 

선운사 경내 제일 끝에서 도솔산으로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암자처럼 생긴 제실 건물이 보인다. 건물 바로 뒤편에 인촌 김성수 선생 조부인 김요협의 묘가 있다. 조모인 영일정씨 묘 즉 선인취와형은 앞산 건너편에 있다. 당시 인촌가는 ‘일인 일명당’을 원칙으로 주변의 명혈은 모두 사들였다. 이곳도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암자가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묘를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인촌가는 상당한 재산을 들여 암자를 사들여 묘를 쓴 것이다. 자리를 잡아 준 지관에게도 상당한 금액의 사례금을 지불하려고 하자 지관이 거절했다. 대신 자기 후손들 5대까지를 책임지라고 했다고 한다.

이곳은 꿩이 엎드려 있는 복치혈로 유명하다. 그런데 앞에 매 바위가 있어 꿩을 잡아먹으려고 노리고 있다. 꿩은 긴장하며 기운을 바짝 차려야하므로 발복이 제대로 된다는 자리다. 그러나 안심을 해도 된다. 왜냐하면 옆에 매를 노리고 있는 개이빨산이 있기 때문이다. 꿩과 매와 개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루고 있는 형세다. 자연이나 사람이나 적당한 경쟁상대가 있어 긴장해야 발전하는 법이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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