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잘 봤느냐는 7만원, 대학은 어디 갈 거냐는 10만원, 취업은 언제 할 거냐는 15만원, 결혼은 안하느냐는 20만원...

지난 한가위에 언론들이 너도나도 퍼 나르고 전 국민들이 꼭 알아야하는 정보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잔소리메뉴판 이라는 내용이다. 일 년에 딱 두 번, 평소에는 얼굴도 변변히 못 보는 가까운 일가친척을 만나는 명절에 생판 모르는 사람도 아닌 작은 아버지나 고모, 이모부, 팔 촌 형의 관심을 잔소리 메뉴판에 올려놓은 당당한 젊은 친구들에게 무슨 대단한 결단력을 보인 결의의 상징인 것처럼, 흡사 그런 내용도 모르고 관심의 말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원시인 취급을 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과도 같은 시대의 흐름이라며 떠들어댔다. 심지어 패널이라는 이름으로 전문가로 초대받은 인사들은 한 술 더 떠 아무렇지도 않게 어른들에게 잔소리 말라는 젊은 친구들의 요구에 엄지손가락을 망설임 없이 치켜세운다. 물론 요즘시대에 젊은 친구들이 무섭기도 하겠다. 그들의 ‘좋아요’가 자신들이 먹고 사는데 중요한 지표가 될 수도 있고, 그들의 현란한 SNS 실력으로 몇 시간이면 족하다는 속칭 신상 털기에 겁도 날만 하겠다.

 

그럼에도 또 다른 이야기로 덕담을 해줘야 한다는 욕구도 있다. 참으로 어른 노릇하기 힘든 세상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잔소리라 하기도 하고 덕담이라 하기도 한다. 물론,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기분이 상하면 잔소리로 들릴 것이고 귀에 달달하게 들리면 덕담으로 들릴 것이다. 누군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는 없다. 울음소리와 서툰 몸짓을 통해 부모와 소통을 배우기 시작했고, 보다 정확한 언어와 표정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지혜를

자연스럽게 생활에 담아내는 것이 우리들이었던 것이다. 현재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 위를 딛고 서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과거는 무조건 고리타분하고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은 우리 스스로를 정체성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혹시 나의 잔소리가 아닌 덕담이 듣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면 나도 덕담메뉴판을 만들어야겠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확인과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얼마나 따뜻한 행복인가를 가르쳐주는 가격은 잔소리보다는 더 받을 생각이다. 내 자식은 어떤 메뉴판을 고를지에 대한 기대조차 부끄러운 오늘, 이 글 또한 잔소리라 비칠 것이라는 솔직한 느낌도 속일 수 없는 씁쓸함이 가을처럼 아프다. 관심이 있으니 자기들에게 말이라도 건내는 것 아닌가. 그것마저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듣기 좋은 말만 골라 듣겠다는 이 욕심을 사회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우리들을 얼마나 삭막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겠다. 어느 누구도 듣기 싫은 소리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말과 듣기 싫은 말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까지 가르쳐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회적 성공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자들의 헛소리에도 맹신적인 반응을 보이는 시대적 불균형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자책감도 함께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광과 투정을 부리는 젊은 친구들을 어떻게 감싸고 안아줘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한다.

유현덕 한국캘리그라피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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