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시나브로 깊어가고 있다. 때 이른 첫서리가 내린 이후로 아침저녁 피부에 닿는 바람이 꽤나 쌀쌀하긴 하지만 아직은 여행이나 독서, 사색 어느 것 하나 어울리지 않을 것이 없는 계절이다. 주말에 즐기는 음악회 나들이의 가벼운 발걸음도 이 멋진 계절 덕분이 아닌가 싶다. 참에, 최근에 찾았던 몇 차례의 공연 중 특별히 마음에 머무는 두어 개의 연주회에 관하여 기억하며, 수고한 모든 분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지난 9월 30일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상임지휘자인 마시모 자네티가 지휘하는 브람스 교향곡 2번을 듣기 위해 롯데콘서트홀을 찾았다. 그는 지난 9월 8일 모차르트 교향곡 35번 ‘하프너’와 여타의 오페라 곡들로 취임 첫 연주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바 있다. 그의 두 번째 연주인 이번 연주회에 개인적으로 남다른 관심을 가진 연유는 오페라 지휘자로서의 명성이 강한 그가 오페라와는 대척점에 있는 브람스를 과연 어떻게 요리할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인데, 놀라움을 표할만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당한 수준급의 연주를 들려줌으로써 앞으로 2년간 그와 함께 할 경기필하모닉이 어느 길로 발전되어 나아갈지 그 여정을 기대할만했다. 드라마에 강한 지휘자여서일까? 브람스의 전원 교향곡이라고도 불리는 이 곡이 품고 있는 인간적인 온화함과 따스함, 그리고 눈부신 자연의 밝은 숨결을 설득력 있게 청중에게 전달하는 스토리텔링의 뛰어난 능력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모차르트 풍의 경쾌함과 축제의 환희를 빼어나게 표현한 4악장에서는 강약의 소리의 낙차를 이용한 폭발적인 다이내믹과 템포의 극적인 변화로 피날레까지 몰아치며 한편으론 청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도 했다. 11월 25일, 경기도 문화의 전당에서 역시 그의 지휘로 브람스 교향곡 제1번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흔히 베토벤의 불멸의 9개 교향곡을 잇는 작품이라 일컫는 이 곡을 그가 또 어떻게 녹여낼지 궁금하고 그 기대 역시 적지 않다.

다음은 지난 10월 7일 동탄복합문화센터 반석아트홀에서 있었던 ‘JYM앙상블’의 공연이다. 이 공연은 창단 이래 매년 전석 매진이라는 어느 일간지의 보도를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된 연주회다. 여기서 전석 매진이란 그 의미가 크다. 즉, 그것은 출연자나 단체의 그 지역에서의 지명도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이고 청중들이 지난 연주를 좋은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주관부처의 홍보와 기획능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음악회장에 들어섰을 때 그러한 요소들이 모두 복합, 유기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초등학생 혹은 그보다 더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젊은 부부들이 많았음에도 공연장의 분위기가 진지했고 또 연주 중의 호응도나, 큰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모습에 동탄 주민들의 클래식 공연에 관한 갈망과 수준 높은 의식이 보이는 것 같아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프로그램은 재즈 트리오를 비롯, 피아노 두오, 실내악곡까지 다양한 곡들로 짜였다. 여유 있게 노래하는 현 파트와 피아노의 쾌활한 움직임이 어우러져 상쾌함과 싱그러움을 잘 살려낸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는 이날의 하이라이트였으며, 클로드 볼링의 재즈 트리오를 위한 모음곡을 연주할 때 보여준 연주자들의 의도적인 재미있는 연출은 공연 초입, 관객들과의 소통을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였고 클래식 음악회란 점잖게 앉아 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청중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의미에서 그것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공연 후 잠시 출연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발전에 나름의 소명감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출연자들의 대부분이 유럽과 미국에서 수학한 후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연주자들로서 주요 멤버들은 화성시에 소재한 수원대학교 교수이거나 동 대학 음대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공연을 주관한 화성시문화재단의 입장에서 보자면 화성시민들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임에 틀림이 없다. 두 단체의 건설적인 교류로 지역사회 문화발전을 위한 더 큰 시너지를 기대해 본다.

박정하 중국임기사범대학교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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