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고종 23) 5월 3일 프랑스 초대공사 콜랭 드 플랑시( Victor Collin de Plancy·1835~1922)가 경복궁 근정전에서 조선의 국왕 고종을 알현했다. 프랑스는 1886년 5월 조선과 통상조약을 체결하고 1년 뒤인 1887년 조선의 문화를 잘 이해하는 외교관을 한 명 파견했는데 이때 공사로 임명된 이가 바로 플랑시였다. 그는 동양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전문가를 양성한다는 목적으로 프랑스가 루이 14세 시절인 1669년에 세운 ‘동양어학교’ 출신이기 때문에 한문 해독능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플랑시는 조선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 스스로 조선의 각종 서적을 수집했다. 그리고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책들은 조선 정부에 요청해 프랑스를 위한 선물로 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다 플랑시는 조선의 의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를 요구했다. 이에 고종은 한불 수교 10주년을 기념해 1795년(정조 19) 윤 2월 화성행궁에서 개최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를 프랑스 정부에 선물로 증정했다.

이처럼 플랑시는 고종과 조선의 관리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이용, 일반인들이 감히 들여다 볼 수 없는 각종 서적과 문화재들을 대거 수집해 자신이 소유하거나 프랑스 본국으로 보내 연구를 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박물회(萬國博物會)’에 경복궁 근정전 절반 크기로 조선관(朝鮮館)을 만들어 조선의 진귀한 물품을 전시하자고 제안했다. 고종은 이를 받아들여 만국박람회에 참여했고 조선의 서책, 목기, 가구, 악기, 의복, 무기류, 도자기 등 다양한 물품을 행사장에 전시했다. 그런데 이때 전시됐던 물품들은 대부분 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전시회에 참가했던 조선 관리들이 전시품을 조선으로 다시 보낼 경우 운송비가 많이 들고 변질 될 우려가 있어 차라리 프랑스에 기증하거나 현지에서 처분하자고 고종에게 건의했기 때문이다. 고종은 이러한 의견에 동의했고, 당시 조선 최고의 서책들과 진귀한 물품들은 플랑시를 비롯한 프랑스 관계자들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종은 만국박람회가 끝난 뒤 조선의 국위 선양을 했다는 이유로 플랑시를 특 1등으로 서훈하고 태극장을 하사했다.

파리 만국박람회를 통해 플랑시가 부수적으로 얻은 서책 중의 하나로 추정되는 것이 바로 얼마 전 수원시가 국내 최초로 복제에 성공한 ‘한글본 정리의궤(整理儀軌)’다. 이 책은 국내에는 없는 판본으로, 현존하는 한글의궤 중 가장 이른 연대의 의궤로 추정된다. 총 48책 중 13책만 현존하고, 12책은 국립동양어대학에서, 나머지 한 권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각각 보관 중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정리의궤(성역도) 39’는 도화서 화원이 그린 채색 본으로 우리에겐 국보급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화성성역의궤도 없는 봉수당도, 장락당도, 복내당도, 유여택도, 낙남헌도 등이 컬러 그림으로 수록돼 정밀한 수원화성복원을 하는데 있어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2016년에 처음 채색 본 정리의궤 성역도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조가 지극한 효심으로 어머님을 위해 만들어 드린 조선 최고의 의궤가 100년이 넘도록 남의 나라 땅에 잠자고 있었는데 우리 학계에서는 실물을 확인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정리의궤의 존재를 언론을 통해 밝혔고, 이후 각종 세미나와 논문을 통해 정리의궤에 대한 연구가 하루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행히 수원시가 정리의궤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프랑스와 2년간의 협상 끝에 정리의궤 13책을 원본과 거의 똑같이 복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지난주부터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이를 전시하고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리의궤는 프랑스가 약탈해간 물품이 아니기 때문에 문화재 환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프랑스는 이점을 우려해 혹시나 수원시가 원본을 돌려달라고 할 까봐 복제 협상 자체도 무척 꺼렸다고 한다. 조선 최고의 의궤 원본이 남의 나라 도서관에서 제 주인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서러울 뿐이다. 하지만 복제본도 원본과 다르지 않으니 문화를 사랑하는 경기도민들이 찾아가 관람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가 하루빨리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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