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정부’ 라고 하더니 고용 참사와 민생 피폐를 초래한 데 대한 책임윤리, 왜 인식하지 못하나?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문재인 대통령을 따라 평양에 간 대기업 총수들이 옥류관에서 식사할 때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했다는 말이다. 이 소식에 그간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던 리선권의 경질을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그러자 정부·여당은 문제 발언 실종시키기와 초점 흐리기에 나섰다.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던 통일부 장관은 며칠 뒤 “전해 전해서 들은 것이라 뭐라고 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고 흐리멍덩하게 말했다. 여당 원내대표는 “당시 자리에 있던 기업 총수 절반에게 확인했는데 이야기를 못 들었다거나 심각한 게 아니었다고 하더라”라며 흔적조차 지우려 했다. 권력이 기업 총수들을 상대로 입막음을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은 그래서 나왔다.

북한 심기를 살피는 일이라면 만사를 제치고 나서는 여권의 발 빠른 조치로 리선권은 면죄부를 받게 생겼다. 시계 때문에 회담장 출석이 늦었다고 한 조명균 통일부 장관에게 “시계도 주인 닮아서”라고 대놓고 핀잔을 줬던 리선권의 안하무인과 기고만장은 이 정권이 알아서 설설 기는 한 계속될 것이다.

리선권의 ‘목구멍’ 발언을 없던 일로 치부한 이 정권의 책임자들이야말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힐난을 들어야 할 것이다. 경제가 파탄지경이어서 서민을 비롯한 국민 대다수의 삶이 고달파졌기 때문이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각종 경제지표를 발표할 때마다 확인할 수 있는 건 경제 추락이고, 고용 참사이며, 민생 피폐다. 그런데도 청와대나 민주당은 ‘환경 탓’, ‘남 탓’을 하고 있다. 국제경제 환경이 나빠져서,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 인구 구조가 바뀌어서, 전(前) 정권과 전전(前前) 정권이 경제 구조조정을 하지 않아서 등등의 변명만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정치의 요체인 ‘책임윤리’를 리선권 발언 지우듯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것처럼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했다. 그는 “국민의 삶을 함께 돌아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지만 통계와 여론조사 등을 통해 증명되고 있는 힘겨워진 국민의 삶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진솔하게 성찰하고 반성하는 내용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경제 체질과 사회 구조가 바뀌고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소득주도성장론 등 기존 정책을 그대로 밀고 가겠다고 했다.

‘일자리 정부’를 자처한 대통령이 고용 참사가 발생한 데 대해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일자리 대란의 주범으로 대다수 경제학자들이 꼽고 있는 소득주도성장론을 신주단지처럼 받들겠다고 하는 걸 보고서 탄식이 절로 나왔다. 대통령이 문제의 경제정책은 놔두고 그걸 집행하는 사람들(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을 바꿀 거라는 이야기엔 냉소를 금할 수 없었다. 경제와 민생에 독이 되는 정책을 고수하는데 사람을 바꿔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후임자로 거론되는 이들이 ‘그 나물에 그 밥’이니 뭐가 달라지겠는가 싶어서였다. 제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인 민주노총 등 노동계에 대해 대통령이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걸 보면서는 ‘규제개혁은 말뿐이고 노동개혁은 외면하는 데 무슨 재주로 혁신성장을 하겠다는 건가’라고 묻고 싶었다.

19세기 영국 정치가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오두막이 행복하지 않으면 궁전도 안전하지 않다”고 했다. 민생이 나빠지면 정권이 위험해진다는 얘기다. 민주당 대표가 ‘20년 집권, 나아가 50년 집권’ 운운하며 희희낙락하고 있지만 경제를 멍들게 하는 정책을 고집해서 민생이 결딴날 때엔 이 정권을 겨냥한 ‘촛불’이 등장할지 모른다.

이상일 전 국회의원(단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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