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48년(가락기원 7) 7월 27일, 가락국 궁궐에서 조회를 마친 9간(九干·9지역의 원로)은 수로왕에게 좋은 배필을 구해 혼인하라고 고언 했다. 그들은 키가 9척이요, 8자 눈썹에, 얼굴은 용과 같이 위엄 있게 생긴 수로왕이 국왕이 된 지 7년이나 지났음에도 결혼을 하지 않고 있어 자신들의 딸 중에서 한 명을 골라 왕비로 삼기를 간청한 것이다. 그러자 수로왕은 “짐이 이곳에 내려온 것은 하늘의 명령이고, 짐에게 짝을 지어 왕후를 삼게 하는 것도 역시 하늘이 명할 것 인즉 경들은 염려 마시오” 라며 이들의 청을 거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로왕은 신하들에게 가야 바다를 조망 할 수 있는 망산도로 가서 배가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게 했다. 얼마 후 붉은 빛깔의 돛을 달고 검붉은 빛의 깃발을 휘날리는 배 한 척이 북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신하들이 망산도에서 횃불로 신호를 올리자 그 배는 미끄러지듯 내달아 항구에 도착했다. 그 배에는 외국인 공주 한 명과 시종 20명이 타고 있었다. 수로왕은 공주가 있다는 소식에 매우 흡족해 하며 9간에게 공주 일행을 대궐로 초청하라고 지시 했다. 그러나 공주는 자신을 데리러 온 사람들에게 “나와 그대들은 초면인데 어찌 경솔히 따라갈 수 있겠는가” 라며 동행을 거절했다.

공주가 함부로 배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한 이야기를 들은 수로왕은 다시 한 번 정중하게 공주를 초청하고 궁궐 서남쪽 6리 되는 지점에 장막을 치고 그녀를 기다렸다. 두 번째 초청에 공주는 항구에 배를 대고 육지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자기가 입고 있던 비단 바지를 벗어 가야의 산신(山神)에게 바친 후 수로왕이 있는 곳으로 갔다. 공주가 가져온 화려한 비단 의상과 금은·주옥·패물 등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공주가 점차 수로왕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자 수로왕은 직접 나아가 정중히 맞은 뒤 장막 궁전으로 함께 들어갔다.

장막 안으로 들어서자 공주는 조용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는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입니다. 성은 허(許)이고 이름은 황옥(皇玉)이며 나이는 16세입니다. 올해 5월 제가 본국에 있을 때 부모님께서는 저를 보시고 ‘우리가 어젯밤 꿈에 황천상제(皇天上帝)를 뵈었는데 상제의 말씀이 가락국의 임금 수로는 하늘에서 내려 보내어 왕위에 오르게 한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사람인데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에게 공주를 보내 짝을 짓도록 하라 하시고는 하늘로 올라 가셨단다. 꿈에서 깬 뒤에도 상제의 말씀이 아직까지 귀에 생생하니 너는 곧 그곳으로 떠나거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배를 타고 멀리 나아가 신선이 먹는 대추(蒸棗)를 구하고, 하늘로 가서 선계의 복숭아(蟠桃)를 찾은 뒤 이제야 감히 임금의 얼굴을 뵙게 된 것입니다.” 이에 수로왕 또한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자못 성스러워 공주가 멀리서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오. 그래서 신하들이 왕비를 맞으라는 청을 따르지 않았소. 이제 현숙한 공주가 스스로 오셨으니 이 몸은 매우 행복하오” 라고 말했다. 이후 수로왕과 아유타국 공주는 혼인을 맺고 백성들을 자식처럼 사랑하며 나라를 잘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바로 인도에서 온 허왕후(許王后)의 설화다. 아유타국은 현재 인도의 갠지스강의 지류인 고그라강 연변에 있는 ‘아요디아(Ayodhya)’ 지역으로 추정된다. 허왕후 설화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고대부터 인도와 해양 교류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인도와 가야의 국제결혼이 가능했던 것은 바닷길을 통한 국제 교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모디 인도 총리의 공식 초청으로 인도를 방문 한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 6일 우타르 프라데시주 아요디아에서 열린 허왕후 기념공원 기공식에서 표지석을 제막했다. 한국과 인도는 양국 간의 오랜 유대를 되새기기 위해 아요디아에 허왕후 기념공원을 공동으로 조성하기로 하고 그동안 함께 공원을 설계해 왔다. 인도 정부는 허왕후 기념공원 사업에 대해 파격적으로 지원해 부지도 애초 계획된 1만㎡에서 1만2천776㎡로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인도는 자원이 풍부하고, 인적자원이 두터운 미래가 있는 나라이다. 2천 년 전 인도에서 온 허왕후가 우리와 교류의 길을 만들었듯. 인도로 간 김정숙 여사가 인도와의 새로운 교류의 길을 만들고 돌아오길 기대한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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