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은 낙엽으로 지기 전의 찬란한 자기 표현이다 . 엽록소 푸른 클로로필 스러지자 잔토필 , 카로티노이드 , 안토시아닌 , 탄닌 저마다의 때깔인 황색 , 노란색 , 붉은색 , 갈색이 현란하게 드러난다 . 가을볕의 따사로운 질감은 얇아진 갈잎의 햇빛 투과가 그 느낌을 더한다 . 추색 짙은 숲속의 햇빛은 스테인드글라스가 빚은 예배당의 그것처럼 깊고 따뜻하다 . 가을 나무 밑에 서면 단풍은 복잡한 생각과 정신을 허허롭고 마알간 영성으로 정갈히 씻는다 . 사색 깊어진 가을 산을 오른다 .

야트막한 고개 우이령 옛길 7km 를 장흥면 교현리로부터 걸었다 . 도봉산과 북한산은 도봉구 우이동과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를 잇는 우이령길로 산이 구획된다 . 우이령길 걸으며 길 양편으로 보는 두 산의 뒤태는 빼어나다 . 계곡 물은 맑고 풍성하여 군부대 유격장이 자리잡을 정도이다 . 땀과 먼지 범벅이 되었어도 훈련 후 계곡물에 텀벙 몸 씻고 훈련복 빨던 재미를 군생활 겪은 남자들은 안다 .

유격장 옆 샛길로 가파른 길 도봉산 조금 오르면 절벽 밑 천년 역사의 석굴암에 닿는다 . 뒤로 관음봉 우뚝하여 , 대웅전 처마 밑 녹슨 풍경과 함께 카메라 앵글에 잡힌 오봉의 자태가 부처님 광배인 양 눈부시다 . 석굴 앞에서 윤장대 전각 보자니 , 남으로 아취 서린 낙락장송 사이 한 일 ( 一 ) 자로 연달은 북한산 상장능선이 아득하고 시원하다 . 가히 장관이다 .

의정부가 고향인 필자는 초등학교 1 학년 겨울 1968 년 1 월 21 일이 기억에 뚜렷하다 . 그믐으로 가는 컴컴한 밤이 그 몇일동안 대낮처럼 환해서 , 곡절 모른 채 밤새 동무들과 신나게 놀았다 . 도봉산 · 사패산뿐 아니라 의정부 상공에 개미까지 보일만치 조명탄을 뿌렸다 . 청와대 습격에 실패하고 도주한 무장공비의 수색이었다 .

무시로 드나들던 그 우이령길은 1·21 사태로 끊겼다 . 2009 년 들어 선착순 사전 신청으로 하루 1 천명의 제한 통행이 허용되기까지 , 장장 40 년간 잊혀진 길이었다 . 무장공비가 침투한 길이라는 이유로 폐쇄하였으나 , 사실 김신조 일당이 우이령을 길따라 걷지는 않았을 것이다 . 도봉산에서 북한산으로 그 길의 한 지점을 단 몇초동안 횡단하였을 터이다 . 점을 선으로 확대 판정하여 싸잡아 구속한 , 과거의 행정편의주의와 권위주의가 읽힌다 .

DMZ 내 초소가 부분적으로 폐쇄되고 , 판문점 JSA 를 북측까지 관광객 드난할 수 있게 세상은 변했다 . 지척의 청와대 뒷길과 인왕산까지 이미 출입 허용하였으니 , 시대 정신으로 보나 실제적 논리로 보나 우이령길 통행을 묶은 당초의 사유는 해소되었다 . 처음 취지와 무관한 환경보호 빌미로 완전 개방을 반대하기도 하나 , 이는 다만 관리 방법의 문제일 수도 있다 . 게다가 그 자연보호 대상이 왜 하필 거지반 반세기나 지나치게 구속한 우이령길이어야만 하나 .

북한산과 도봉산은 수도권 시민들의 건강과 정서에 자연이 건넨 소중한 선물이다 . 그렇기는 하나 꽤 높고 험한 편이라서 노인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 . 우이령길을 자유롭게 수시로 걷게 허락한다면 , 급증하는 노년 인구의 건강과 여가에 큰 보탬이 되겠다 . 손주가 늙은 할아버지 손잡고 걷는 , 맨발에 마사토 착착 붙는 기분 좋은 감각의 우이령길 상상하면 마음 흐뭇하다 . 새벽 안개 헤치며 그 길을 걷고싶다 . 눈 쌓인 새벽 숫길에 발자욱 남기며 우이령고개를 넘고싶다 .

양주시 장흥면 주최로 “2018 우이령길 범시민 건강걷기대회 ” 가 있다기에 , 지난주 하루동안 통제 풀린 그 길을 학생들과 걸었다 . 양주시장과 지역구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기관 · 단체 인사들과 많은 주민들이 함께 걸었다 . 고갯마루에서 우이령길의 환경보호와 완전개방에 애쓰자는 다짐을 두었다 . 소통의 시대정신에 맞추어 , 우이령길 그 아름다운 힐링 코스를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바란다.

유호명 경동대학교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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