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학교에서 학생들의 청소가 사라졌다. 생각해보면 예전 학창시절은 학교생활이 공부 반, 청소 반이었던 것 같다. 요즘엔 학교에서 학생들이 청소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대부분 학교는 화장실과 현관, 복도와 계단, 휴게 공간의 청소는 학교에 고용된 어른들이 하고 있다. 운동장과 놀이 공간 등 실외 청소도 주로 연세 많은 노인이 담당하고 있다.

요즘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청소 지도와 청결 교육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 문제는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버리는 사람 하나를 열 사람이 못 당한다. 결과적으로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전에는 학교에 아침마다 주번 조회가 있었다. 주번 교사는 한 주 동안 학생들이 실천해야 할 생활 목표를 발표했고, 주번 학생들은 아침 일찍 등교해 교실 청소는 물론 담당구역을 청소했다. 덕분에 학생들은 깨끗하고 정돈된 교실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청소가 힘들고 번거롭다 해 학생들이 청소하는 것을 없앤 결과, 요즘의 학생들은 청소할 줄도 모르고 아무 데나 휴지를 버리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학교는 정녕 교과 공부만 시키는 곳인가? 공자의 제자들이 공부의 시작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서슴없이 ‘공부의 시작은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자가 말했듯 학교는 공부하는 신성한 곳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소중한 공간으로 청결한 장소여야 한다.

시민의식 수준을 보려거든 시민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을 가보라는 말이 있다. 예전 공중화장실의 경우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그러나 요즘의 고속도로 휴게소나 시내의 공중화장실은 놀라울 정도로 깨끗하다. 이에 반해 학교 화장실의 경우 사용 시설은 현대화돼 있는데, 학생들의 수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청결 교육과 청소 지도를 제대로 시키지 않은 탓이다.

청소는 학생에게 아름다운 심성을 가꿀 수 있게 해주고 성숙한 민주시민 의식을 길러줄 수 있다. 학생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 교육을 위해 버리지 않는 습관과 청결 교육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깨끗이 해라’는 말만 구호처럼 내세울 게 아니라, 청결이 몸에 배도록 실천하고 습관화시키는 청소 지도 교육을 해야 한다. 깨끗한 환경이 좋은 가정, 좋은 학교 교육을 만들 수 있다. 가정에서는 학과 공부에 앞서 자기 주변을 깨끗이 하는 청결의 습관화, 생활화를 할 수 있도록 자녀를 가르쳐야 한다. 아울러 학교에서도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청소 지도를 해야 한다.

교육의 핵심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는 학생에게 무언가를 배우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그동안 가르치는 교육 행위는 상급학교 입시를 위한 교과 위주의 교육에 지나칠 정도로 치중됐다. 그 결과 학생들을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시켜버렸다.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의 지·덕·체의 조화로운 발달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작교육이 필요하다.

노작교육은 일의 교육적 가치를 가르치는 교육이다. 주지주의, 형식주의 교육이 강조하는 타율적이고 수동적이며 비활동적인 성격에 반해, 노작교육은 자기활동을 통한 학습이다. 일찍이 루소는 노작교육이 인간적인 특성을 길러 주는 과정이라고 했고, 페스탈로치는 노작교육이 지적·도덕적 능력 도야의 기반이라고 뒀다.

학생들에게 노작 활동을 하게 함으로써 육체와 정신의 일치감을 경험하게 해 전인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작 활동을 통해 삶의 구체적 모습들을 체험함으로써 삶에 대한 이해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게 해야 한다. 노작 활동은 사회성과 도덕성의 발달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진취적이고 실천적인 습관을 기르게 할 수 있다. 손으로 파악될 수 없는 것은 결코 머리로 이해될 수 없다.

김유성 죽전고 교장(한국국공립고등학교장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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