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는 임금주도성장,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 개념과 관계도 불분명한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경제침체와 일자리 대란은 지속되고 있다. 대통령이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을 실현하기 위해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성장론에 대한 쓸모없는 논쟁만 다시 촉발되었다. 국민들에게는 한국경제의 성장론이 무엇이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 사실 녹색성장이나 창조경제나 소득주도성장이나 포용적 성장이나 모두 정치적 용어이며 국민들에게는 아무 차이가 없다. 대통령의 성장론이 무엇이든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고 주머니 사정만 좋아지면 된다.

정부가 제대로 된‘성장론’이 없어 경제가 나빠지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대학교수가 아니기 때문에 개념을 설명하기보다 정책과 사업으로 그리고 수치로 결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돈을 푸는 것 이외에는 아무 정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경제에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경제성장이란 내거는 이론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결국은 소득과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 통합을 위해서는 소득격차도 완화되어야 한다. 경제성장과 평등한 분배는 모든 현대 국가의 목표이다. 시장은 자유경쟁으로 인해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초래하기 때문에 정부가 비시장적 정책수단을 통해 소득재분배를 하여 시장경제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 모든 정부의 기본프레임워크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복지국가인 스웨덴의 시장소득분배는 한국의 시장소득분배보다 불평등하다. 다만 복지에 기반한 소득재분배를 통해 불평등이 완화될 뿐이다. 물론 스웨덴 국민들은 이를 위해 본인들이 버는 돈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낸다.

사실 포용적 성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유행했던 개념이다. 포용적 성장은 소득분배 개선, 일자리 창출, 복지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지만, 포용적 성장을 위해서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는 것이 국제기구들의 보편적인 주장이다. 세계은행은 포용적 성장을 위해 소득재분배보다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 증가를 강조한다. 아시아개발은행은 포용적 성장이란 빈곤층들이 동등하게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경제적 기회를 주는 성장 즉 광범위한 일자리 창출을 통한 성장이라고 주장한다. 유럽연합은 유럽발전전략으로 포용적 성장을 핵심 개념으로 하는 Europe 2020을 추진하면서 높은 고용수준, 투자확대, 빈곤퇴치, 노동시장 현대화, 직업훈련, 사회보호시스템 보장 등을 위해 경제구조의 혁신에 노력하고 있다.

결국 포용적 성장은 일자리 확대를 통한 경제성장이다. 경제성장은 포용적 성장을 위한 동력이자 소득격차를 줄이는 수단이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없이는 포용적 성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포용적 성장이 소득재분배를 위한 개념으로 왜곡되고 있는 것 같다. 소득주도성장이 비판을 받으니까 포용적 성장으로 용어만 바꾸었다는 비판도 있다.

포용적 성장은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라는 균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며 이를 위해 규제개혁도 추진하고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도 늘리는 것이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정부가 돈을 풀어 성장률을 높이고 공공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포용적 성장이 아니다. 포용적 성장은 현금을 무조건 나눠주는 정책도 아니다. 포용적 성장은 시장에서 배제되거나 실패한 사회적 취약계층들이 일자리를 가지고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일자리도 없고 경제는 활력을 잃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좀 더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경제가 살아나야 포용적 성장도 가능하다.

김은경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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