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륵사는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282(신륵사길 73)에 있다.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 절이 유명해진 것은 나옹선사(1320~1376)가 이곳에서 열반했기 때문이다. 나옹은 경북 영덕 출신으로 이름은 혜근, 호는 강월헌(江月軒)이다. 나옹은 21세에 출가하여 전국 사찰을 편력하면서 정진하다가 충목왕 4년(1348) 원나라 수도인 연경으로 건너갔다. 인도 스님인 지공화상을 만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다.

지공화상은 인도 마가다국 출신으로 이슬람교의 침입으로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자 원나라에 와서 불법을 강론하였다. 지공은 특히 선(禪) 사상을 폈는데, 원 황제가 총애하여 전국을 돌며 설법토록 했다. 이때 나옹도 함께 다녔다. 불교의 수행방법에는 교종과 선종이 있다. 교종은 불교 교리를 배우고 그를 통해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주로 왕실이나 귀족층에서 발전하였다. 선종은 인간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품성을 지닌 존재로 본다. 따라서 개인의 수행과 해탈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언어나 문자를 거치지 않으므로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고려 중기까지는 교종이 발달하였다. 이후는 지눌이 선종 중심의 조계종을 만들면서 선종이 부흥하였다. 고려 말기 조선 건국파들은 선종을 후원하며 교종과 가까운 고려왕실의 기세를 꺾었다. 바로 그 중심인물이 나옹선사와 무학대사(1327~1403)다. 공민왕 7년(1358)에 귀국한 나옹은 회암사에서 불법을 펴 선종을 새롭게 부흥시켰다. 당시 회암사는 전국 사찰의 총본산으로 승려 수만 3천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선종이 확대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긴 고려 왕실은 나옹이 눈에 가시였다. 마침 나옹이 낡은 회암사를 중수하고 낙성회를 열자 많은 인파가 몰렸다. 특히 여인들이 비단과 곡식을 가져다 공양하느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귀천을 따질 것도 없이 몰려들자 고려 왕실은 관리를 보내 절문을 닫고 부녀자들의 왕래를 금지시켰다. 그리고 나옹에게는 밀양 땅 형원사로 당장 떠날 것을 명령하였다.

나옹은 어쩔 수 없이 길을 떠났다. 그러나 몸이 좋지 않았다. 더 이상 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길에서 가까운 신륵사에 들렸는데 곧 죽음을 맞이하였다. 나옹선사의 죽음에 대해서는 독살설 타살설 등 의문이 많다. 나옹은 열반에 들기 전 신륵사 법상에 앉아 마지막 설법을 하였다. “너희들을 위하여 열반 불사를 마치겠노라.” 그러자 봉미산 구름 위에 오색구름이 덮었다. 우왕 2년(1376)이다. 나옹의 법맥은 제자인 무학이 이었고, 무학의 도움을 받은 이성계는 1392년 조선을 세웠다.


신륵사는 여주시내와 산맥을 달리한다. 여주시내는 한남정맥에서 산세가 비롯되었다. 강 건너에 위치한 신륵사는 백두대간 오대산 줄기다. 산은 강을 건널 수 없기 때문이다. 오대산에서부터 내려 온 산맥이 남한강을 만나 신륵사의 주산인 봉미산(156m)을 세웠다. 강원도의 높고 험준한 산세가 이곳에 와서는 낮고 순해졌다. 그렇지만 산맥의 변화는 매우 활발하여 기운이 넘친다. 봉미산에서 갈지자로 내려온 맥이 좌우로 팔을 벌려 좌청룡과 우백호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중출맥은 극락보전으로 향하는데 기세가 힘차다.

청룡은 남한강변까지 내려가 강월헌 육각정이 있는 바위에서 끝을 맺었다. 절벽 아래로는 여강이라 부르는 남한강이 흐르고 있다. 풍경이 매우 아름답지만 강물이 반배하고 있어 물살이 상당히 빠르다. 만약 이곳에 암반이 없었다면 강물의 침식작용으로 신륵사는 오래 보존되지 못했을 것이다. 빠른 물살의 강물이 바위에 부딪치면서 힘을 잃고 신륵사 앞을 지날 때는 유유해진다. 그래도 강바람은 상당히 매섭다. 이를 완충하기 위해서 강월헌 위쪽에 다층전탑을 세웠다. 이 탑으로 인해 신륵사는 비보사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신륵사의 국세는 다른 사찰에 비해 좁은 편이다. 건물은 규모가 작고 숫자도 적어야 좋다. 그런데 너무 많은 건물이 들어서 있어 예전과 달리 답답하다. 사찰만이나라도 인간의 욕심이 없었으면 좋겠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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