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自殺)이란 단어는 사용하기 꺼려지는 단어입니다.

자살이란 자기 자신을 자기가 죽인다는 것으로 볼 때 가장 잔인한 살인 행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말에서는 자살에 살(殺)자를 사용하는 것을 피해 자결(自決), 자재(自裁), 자문(自刎), 자처(自處), 자인(自刃), 자진(自盡), 경사(?死), 사명(捨命) 등의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죽음이 연상되지 않는 단어만으로 보아서는 아름답기까지 한 ‘옥쇄(玉碎)’란 말도 자살과 동의어로 쓰입니다.

김동명 시인의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로 김동진 선생이 곡을 붙여 많은 이들에게 불려지는 가곡에서 ‘옥 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도 옥쇄(玉碎)를 풀어 시어로 쓴 것이라 하겠습니다.

‘옥쇄’는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져 흩어진다는 뜻으로 명예나 충절을 지키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자살을 아름답게 표현한 말입니다.

특히 일본 군국주의 시대에는 전쟁 중에 적에게 포로가 되었거나 잡힐 경우 적에게 죽는 것이 불명예스럽다고 하여 스스로 자결을 하는 풍조가 있었는데 이 때 이 자결을 옥쇄라고 하였습니다.

역사의 변혁기에는 충절과 절개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있어 역사의 위대한 교훈을 남기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안타까운 사연을 남겨 눈시울을 적시게도 하는 이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억울하게 누명을 써서 누명을 벗기 위하여 죽음을 택하여 자기의 결백을 증명하는 이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비루한 삶을 비관하여 어느 곳에도 숨을 곳이 없고 어느 사람에게도 동정받을 수 없어 막다른 길을 택하는 이도 있습니다.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에 굴원(屈原 B.C 343~B.C 223)의 자살 이야기는 후세에 많은 것을 생각케합니다.

굴원의 본명은 굴평(屈平)입니다. 초나라 왕실의 일족으로 태어나 회왕(懷王) 때 벼슬길에 나갔습니다. 왕권의 확립을 위해 노력했으나 귀족계급의 반대로 인생의 가시밭길을 걸었습니다.

학식과 문장에 뛰어난 굴원은 초사(楚辭)의 저자로도 유명합니다. 특히 초사 가운데 이소(離騷)는 ‘근심을 만난다’는 뜻을 지녔는데 375구로 된 장편으로 굴원의 대표작으로 왕과 자신을 남녀관계로 비유시켜 자신의 정당함을 호소하고 왕의 변심을 슬퍼하며 왕이 자신을 믿지 않으므로 투신자살을 암시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철의 사미인곡을 일컬어 ‘동방의 이소’라고 김만중이 평한 것도 굴원에 기인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굴원의 어부사는 21C를 살아가며 가끔 충격을 주는 자살에 관한 소식에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어부(漁父)는 굴원의 대립자입니다.

세상은 아무리 사람들이 깨끗함을 외쳐대도 흐리기 마련이고 사람은 아무리 깨끗하게 살려고 해도 오염되게 마련이라는 굴원의 어부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실에도 다름이 별로 없습니다.

가끔 세인(世人)에게 놀라움을 주는 우리 사회 지도자들의 자살 소식에 굴원의 생각이 겹칠 때가 있습니다.

굴원이 세상을 잘못만나 멱라수에 몸을 던진 것인지 오염되고 탁한 세상에 혼자 결백해서 적응을 못한 것인지 판단이 안 설 때가 있습니다.

창랑의 물이 언제 맑아질지도 모르겠고 세상의 더러움만 항상 탓하며 살 수만도 없는게 현실입니다.

상황이 어떻든, 사람들이 어떻든, 자살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살은 누가 뭐라해도 미화될 수 없습니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본이 안되고 다른 이들에게도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처럼 될 염려도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유화웅 시인수필가, (전) 굿파트너스 이사장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