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는 미국 민간의료보험 제도와 영리병원의 부조리한 실태를 고발한다. 우리나라에서 의료민영화와 영리화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주목받는 영화이기도 하다. 의료영리화와 민영화에 대한 괴담을 유포한다는 측면에서 부정적 평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최근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중국 부동산 개발회사가 투자한 제주 녹지국제병원(이하 녹지병원) 개설 허가를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면서 다시금 이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영리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노무현 정부 들어서이다. 제주특별자치도법 제정, 경제자유구역법 개정,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설치, 서비스산업경쟁력강화종합대책 등 법 제도의 개편을 통해 실행되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서 기획재정부가 의료 서비스산업 선진화 주무부처가 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2015년 12월에 보건복지부에서 녹지병원에 대한 설립 승인을 하였고, 지난 12월 5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녹지병원에 대해 ‘조건부 개설허가(내국인 제외, 피부과ㆍ성형외과 등 4개 진료과목 한정)’를 밝히면서 국내 첫 영리병원이 개원할 예정이다.

정책의 정당성은 내용적 합리성과 절차적 합리성을 근거로 판단해 볼 수 있다. 내용적 합리성은 주어진 제약조건 하에서 목표달성을 위한 최적 수단의 선택 정도를 의미하며, 선택의 결과에 초점을 둔다. 이에 반해 절차적 합리성은 대안을 선택하기 위하여 사용된 절차가 인간의 인지능력과 한계에 비추어 보았을 때 얼마만큼 효과적이었는지를 의미하며, 선택의 과정에 초점을 둔다. 복잡성, 모호성, 불확실성 하에서 이루어지는 국가정책은 사실 문제 보다는 가치 판단의 영역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민주주의 사회일수록 최적 해법의 선택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명확한 해답을 찾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여 내용적 합리성보다는 절차적 합리성 준수를 더욱 강조한다.

의료 영리화 찬성론자들은 의료 선진화, 생산 유발효과, 고용창출, 의료서비스 질 향상, 환자들의 의료선택권 보장 등의 긍정적 효과에 주목한다. 이에 반해 반대론자들은 의료서비스 양극화로 현행 국민 건강보험 체계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며 국민의 건강권이 민간 보험사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게 될 것을 우려한다. 의료서비스와 관련된 경제적 편익과 우선시하는 가치가 상충하는 가운데,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 달성에 있어서도 오히려 비영리병원이 영리병원보다 효율적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렇듯 내용적 합리성을 근거로 할 때 바람직한 최적의 선택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제주도민의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 속에서 제주도에서는 녹지병원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공론조사가 6개월 동안 진행되었고, 조사 결과 58.9%가 개설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이와 같은 공론조사 결과와는 다르게 조건부 개설허가로 결정되면서, 관광산업 재도약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도지사의 입장 발표에도 불구하고 허가 취소를 요구하는 보건의료단체와 시민단체들의 요구가 거세게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외국인 의료관광객만 진료한다는 조건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일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 2016년 제주도 홍보자료에서 ‘녹지국제병원은 해외 의료관광객을 주로 대상으로 하지만 내국인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리병원이 확대될 물꼬가 트이면서 상업적 진료행태의 일반병원 확산, 의료비 상승으로 인한 건강보험체계 위협, 의료 양극화 심화, 의료 공공성 훼손 등에 대한 우려를 여전히 강하게 표명한다. 정책의 비일관성과 절차적 합리성 결여로 인해 의료영리화 정책의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건강권은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권이다. 빈부격차가 진료의 차이로 이어지지 않고, 병원비 걱정 없는 사회를 위한 건강권 보장은 국가의 책무이다. 의료 영리화 정책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는 반대 진영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국가의 책무를 다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정책의 일관성과 절차적 합리성 확보가 필수적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김선희 서원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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