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연말이 왔다. 연말과 크리스마스는 자고로 기부와 나눔의 시즌이기도 하다. 누구나 상상하는 구세군 자선냄비나 공동모금회의 사랑의 온도탑 같은 이미지 말이다.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00그룹 임직원과 통장협의회의 보육원 방문 등이 이어지고 SNS를 통해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상과 글을 주고받는다. 혹자는 겨울만 찾아오면 연례행사처럼 번지는 이런 모습들을 비난하기도 하지만, 각박한 현실에서 이런 날 만이라도 온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몇 자 적어본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시대에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빵을 훔친 빈민 노인에 대한 감동적인 재판이 있다. 일명 ‘라과디아 판사’ 일화로 여러 언론이나 칼럼에서 다룬바 있어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 일 것이다. 피오델로 라과디아(1882~1947)는 뉴욕법원 판사였으며 3번이나 뉴욕시장을 역임하며 죽을 때까지 뉴욕 시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다. 뉴욕에는 그의 이름을 딴 라과디아 공항도 있다. 한 노파는 빵을 훔친 죄로 재판장에 오게 되었고 판사는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니 벌금으로 10달러를 내라고 하면서 본인의 주머니에서 꺼낸 10달러를 대신 내주고 법정에 있던 방청객들에게는 모두 50센트의 벌금을 물렸다. “빵을 훔쳐야만 할 정도로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모두 책임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빵을 훔친 ‘개인’을 탓하기보다 개인이 빵을 훔칠 수밖에 없던 ‘사회’를 직시하였다. 또한 공동체가 사회문제에 직면하는 태도, 같이 해결해야 할 동기를 일깨움으로써 이 세상이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임을 일깨워준다. 이는 ‘나눔’ 그 이상이다.

라과디아 자서전이나 공식적인 문헌에 이 일화에 대한 언급은 없어 사실인 지 여부는 정확하지 않으나, 그가 뉴욕시장에 당선된 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던 점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자신을 기운 나게 하는 가장 좋은 길은 다른 사람의 기운을 북돋우는 것이다. (The best way to cheer yourself up is to try to cheer somebody else up.)”

‘허클베리핀의 모험’ ‘톰소여의 모험’과 같은 희대의 걸작을 남긴 미국의 대문호 마크트웨인(1835~1910)의 명언이다. 마크트웨인의 저서에는 자유와 인권에 대한 확고한 메시지가 담겨있는데, 이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노예주의를 비판하는 메시지로서, 그의 어머니는 가난한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항상 약자에 대한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도록 교육하였다고 한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것보다 개인의 성장과 능력만을 강조하는 우리네 교육과 비교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최근에는 필자가 이사장으로 재직했던 ‘한국사회복지공제회’에서 매년 진행하는 시상식에 다녀왔다. 수상자 30여 명 중 시각장애인이 한 명 있었는데 그분께 전달하는 상패를 특별히 점자로 만든 것을 보고 담당 직원의 작은 배려에 감동과 뿌듯함을 느꼈다. 결과물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런 문제일수록 간과하기 쉽다.

춥고 삭막한 이 계절, 라과디아 판사처럼 유명한 일화이건, 남들이 몰라주는 작은 배려이던 간에 함께 마음을 나누며 온기를 전할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혼자 꾸는 꿈은 그저 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다.” - 존 레논/오노 요코

조성철 한국사회복지공제회 명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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