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5년(영조 31) 1월 20일 나주 관아 객사인 망화루(望華樓) 둘째 기둥에 흉서(凶書)가 붙었다. 오늘 조정에 참된 주인이 없다라는 내용이었다. 이를 풀이하자면 조선의 국왕인 영조가 진짜 임금이 아니라 가짜라는 것이다. 이건 역모(逆謀)에서나 나오는 것이다. 이런 흉서는 22년 전에 남원의 만복사에도 결렸었다. 그러나 그 이후 단 한번도 흉서가 내걸리지 않았는데, 나주에서 나온 것이다.

영조는 이 소식을 듣고 흉서를 내건 역모자를 찾게 하였다. 그러나 흉서는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익명서(匿名書)이기 때문에 주모자를 빨리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숱한 흉서 사건들이 있었지만 범인을 찾기 위해 죄없는 많은 사람들이 잡혀가서 고문을 당했다. 그렇지만 진짜 범인을 찾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조정에서는 반드시 흉서를 내건 역모자를 반드시 잡기 위해 영조와 노론을 반대하는 소론의 강경 세력과 남인들을 자연스럽게 혐의 대상에 올렸다. 그렇게 조사를 하던 중 흉서를 내건 이가 나주 지역에 유배를 온 윤지(尹志)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윤지는 경종대에 노론을 탄압하다가 영조 즉위 후 역모죄로 몰려 죽은 윤취상(尹就商)의 아들이었다. 윤지 역시 영조 즉위 후 4년 뒤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에 참여하여 제주에서 10년, 나주에서 20년 도합 30년을 유배생활 하고 있었다. 나주에 흉서가 걸리자 나주 사람들은 윤지가 걸은 것이라는 소문이 났다. 실제로 순사또가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주의 아전이자 윤지의 비부(婢夫)였던 이효식이 잡혀 들어가자 윤지가 집안에서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없애버리고, 집의 벽에 걸려 있던 글들을 떼어내서 소각해 버렸는데 이 역시 충분히 의심을 살만한 행동이었다. 이러한 여러 소문들과 윤지의 행동은 한 달 여만에 조정에 보고되었다. 영조는 이제 자신에 대한 의심이 모두 사라진 것이라 생각했는데, 자신이 경종을 죽이고 국왕이 된 가짜 국왕이라는 흉서가 20여년 만에 다시 나타나 분노했다. 그리고 영조는 이 흉서의 주범을 반드시 찾아내어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

이에 2월 20일 영조는 금부도사를 나주로 보내 그곳에 유배가 있는 윤지를 체포하게 하였다. 영조는 창경궁 세자전 옆에 있는 동룡문(銅龍門)으로 직접 나가 윤지를 심문하였다. 영조는 윤지에게 흉서를 내건 것을 자백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윤지는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이때 나주의 아전이자 윤지의 제자 기언표가 윤지가 흉서를 쓴 것이 맞다고 하였다. 나주 주막집 주인인 김중재는 기언표가 흉서의 작자가 윤지라고 했다고 증언하기도 하였다. 고문이 심해지자 윤지의 아들 형제들은 자신들이 흉서를 붙였다고 증언하였고, 윤지의 종인 이개봉은 자신이 객사 두 번째 기둥에 붙였다고 했다가, 다시 윤지의 아들이 붙였다고 하는 등 증언이 일관되지 않았다. 국왕이 직접 심문을 하기에 추국청의 심문관들의 고문이 심해지면서 오히려 허위 자백들이 늘어났다. 윤지는 자신이 흉서를 내걸었다는 자백을 하지 않은 채 고문받다가 그만 죽어버렸다. 그래서 나주 관아에 걸은 흉서를 걸은 실제 주범이 누구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주의 흉서 주범은 명확히 증명되지 않았음에도 영조의 반대 세력인 소론의 중심인물 윤지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윤지가 주범으로 확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흉서 사건은 마무리되지 않고 윤지 주변으로 확대되어 윤지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잡혀와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영조와 노론세력은 나주 관아의 흉서 사건을 통해 처음 범인을 잡아 진실을 밝히자는 의도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반대세력들을 제거하는 정쟁으로 삼고 말았다. 이로써 영조대 추구하던 탕평정치에 상당히 심각한 균열이 나타나 노론 일당의 정치체제로 변질되어 가기 시작했다. 이를 역사적으로 나주괘서사건, 을해옥사(乙亥獄死)라고 부른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대자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대통령이 공사주의자라고 비판해도 처벌받지 않는 민주 사회다. 그러니 대통령이 잘못을 하면 공개적으로 비판하면 될 일이지 익명으로 대자보를 붙이거나 고속도로 안내판에 대통령 비난 글을 올리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역시 자신들에 대한 진실된 비판이 있다면 겸허히 받아들여 국민통합과 경제발전을 위해 노력해야지 이를 빌미로 정치적 박해를 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함께 가야만 어려운 경제를 극복하고 남북화해도 이루어낼 수 있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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