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2년 9월 17일, 남병사(南兵使·종2품 무관) 윤구연이 숭례문 앞에서 목을 베이는 참형을 당했다. 그 이유는 바로 술을 마셨기 때문인데, 음주했다는 이유로 호남 지역의 군사를 책임지는 남병사가 참수당한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영조는 조선시대 국왕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금주령을 시행했다. 재위 52년 중 40년에 걸쳐 금주령을 내릴 정도였다. 숙종 대부터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자 영조는 귀한 쌀로 술을 빚어 마시는 것을 금지했다. 처음에는 온건 정책을 폈으나, 1755년 9월 8일 전교를 내려 이듬해인 1756년 정월부터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제사와 연례(宴禮)에는 감주(甘酒·식혜)만 쓰고 홍로(紅露)와 백로(白露), 기타 술이라 이름 붙은 것은 모두 금하고 이를 어긴 자는 중히 다스렸다. 단 군대의 회식 시 막걸리와 농민들이 먹는 보리술만은 허용했다. 이는 양반사대부를 비롯한 기득권층의 고급술 제조와 유통을 막고 흉년 시 곡식 절약뿐만 아니라 검소한 생활의 실천으로 사회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영조의 의도가 들어 있었다.

영조는 본인이 모범을 보이기 위해 1758년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에 나가 자신의 첫 번째 왕비인 정성왕후의 위패가 봉안된 휘령전에서 상식(上食·망자에게 올리는 음식)을 감주 대신 차(茶)로 대신하도록 특별 하교를 내렸다. 몇년이 지난 1762년 9월에 정언(正言·사간원의 정6품 관직) 권극은 한양과 각 도(道)의 감영(監營)에 이르기까지 금주령을 심하게 어긴 자를 적발해 일벌백계의 방도로 삼을 것을 청했다. 그런데 권극의 이런 제안 직후 상소가 하나 들어왔다. 남병사 윤구연이 금주령을 어기고 매일 술을 마셔 취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니 그를 파직하라고 대사헌 남태회가 올린 것이었다.

영조는 몇 달 전 금주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자신의 뒤를 이어 국왕이 될 사도세자도 뒤주에 가둬 죽인 바 있다. 당시 사도세자를 고발한 나경언은 영조에게 “사도세자가 금주령을 어기고 도성의 기생집에 가서 매일같이 술을 마신다”고 거짓 진술을 했다. 실제 사도세자는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체질이었으나, 영조는 신하의 말만 믿고 흥분해 아들을 죽이고 말았다. 자신이 세운 금주령에 어떠한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자마저 죽인 영조에게 윤구연의 음주는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영조는 당장 의금부 금부도사를 보내 그를 잡아오도록 명하고, 선전관(宣傳官) 조성에게 남병영에 가서 술을 빚은 증거를 찾아오도록 지시했다. 만약 12일 안에 증거를 찾아오지 못하면 조성에게도 동률을 적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762년 9월 16일, 마침내 조성이 남병영에서 술 냄새가 나는 빈 항아리와 적은 양의 누룩을 가져왔다. 이 증거가 과연 정확한 물증인지는 알 수 없었다. 조성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거짓으로 가져왔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에 영의정 신만, 좌의정 홍봉한, 우의정 윤동도는 연명(連名)으로 탄원서를 올려 빈 항아리와 누룩 덩어리는 술을 빚고 마셨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없으니 급하게 극형을 시행하지 말고 윤구연을 가둬 명확히 조사할 것을 청했다. 하지만 영조는 조성의 증거를 강하게 믿고 9월 17일 남대문으로 가서 윤구연을 직접 심문했다. 윤구연은 심문 도중 영조에게 실수를 했으니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한양 도성의 백성들도 이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곧이어 영조는 윤구연의 사형 집행을 명령하고 그의 목을 장대에 달아 남대문에 걸었다. 국왕의 명령을 어기고 술을 마시다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 된 것이다.

최근 경북 예천군의회 의원들이 미국과 캐나다 연수 과정에서 술에 취해 접대부를 요구하고 현지 가이드까지 폭행해 현지 경찰까지 출동하는 일이 발생했다. 특히 가이드를 폭행한 의원은 자신의 잘못을 극구 부인하다 폭행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폐쇄회로(CCTV) 영상까지 공개돼 파문이 더 커지고 있다. 영조시대 같았으면 모두 사형에 처해 졌을 죄악이다. 분노한 국민들은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 소속 의원들이 해외연수를 가서 물의를 빚은 것을 문제 삼으며 ‘기초의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청원글까지 올렸다. 예천군뿐만 아니라 전국의 지방의회 얼굴에 먹칠한 이들의 잘못을 명확하게 조사해 엄중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