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군 상동일대는 우리나라 십승지(十勝地) 중의 하나다. 십승지란 난을 피하여 몸을 보전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에 열 군데가 있다. 이곳들은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라고 해서 전쟁, 흉년, 전염병 등 세 가지 재앙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땅이다. 십승지를 전하는 책마다 위치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다음 열군데다.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일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일대,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예천군 용궁면 일대,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시 화북면 일대, 충남 공주시의 마곡면과 유구읍 일대, 경남 합천군 가야면 일대, 전북 무주군 무풍면 일대, 남원시 운봉읍 일대, 부안군 변산면 일대다. 모두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다.

자동차와 비행기가 없던 시절 큰 산이 뒤에 버티고 있고, 거기서 갈라져 나온 산자락이 두 팔로 안듯 감싸주면 외부에는 전혀 노출되지 않는다. 더구나 입구가 좁아 접근도 어렵고, 막다른 길이어서 다른 지역으로 확장성이 없다. 정치·군사적으로 중요한 땅이 아니므로 전쟁이 없는 것이다.

흉년이 없는 것은 입구는 좁은데 안쪽으로 들어가면 넓고 평탄한 공간이 나타난다. 산이 깊기 때문에 물이 풍부하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므로 1년 농사를 지으면 3년을 먹고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농사뿐만 아니라 산과 계곡에서 생산되는 작물도 만만치 않아 경제적으로 부촌이 많다. 오늘날도 ‘십승지 읍면장 협의회’가 구성되어 친환경농산물 공동 브랜드를 개발해 판매하는 등 고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전염병이 없는 것은 외부와 접촉이 어려운 점 때문이다. 또한 공기 좋고 물 좋기로는 십승지 만한 곳이 없다. 십승지는 큰 산 상류에 위치하므로 해발고도가 높다. 사람이 가장 쾌적함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고도는 700~800m라고 한다. 십승지는 여름에도 시원하고 자연향기로 인해 힐링과 치유효과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온도가 점점 높아지고 미세먼지가 많아 각종 질병에 취약해지는 시대다. 오늘날 건강을 위해 십승지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영월군 상동읍은 남한강의 지류인 옥동천의 맨 상류에 있는 지역이다. 하류에는 김삿갓면으로 이름을 바꾼 하동이 있고, 중류에는 중동면이 있다. 동쪽에는 백두대간의 태백산(1566.7m), 북쪽에는 백운산(1426.6m), 남동쪽에는 구룡산(1345.7m), 남쪽에는 삼동산(1179.8m), 서쪽에는 매봉산(1267.6m) 등 고산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각각 산골짜기에서 발원한 물들은 내덕삼거리에서 합수하여 서쪽으로 흘러나간다.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고산지역에서 길은 물길을 따라 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영월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길은 옥동천을 따라 난 31번국도인 태백산로 하나뿐이다. 만약 이 길을 막는다면 북쪽으로 정선이나 남쪽으로 경북 봉화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오늘날도 그러한데 조선시대에 이 지역으로 접근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상동읍이 다른 십승지 지역과 다른 것은 농사지을 넓은 들이 없다는 점이다. 어느 강원도 지역처럼 산중턱 평탄면에 옥수수나 감자와 같은 밭농사가 고작이다. 그런데도 읍이 될 만큼 인구가 많이 살고 있다. 대부분 큰 고을은 강 상류보다는 하류에 있기 마련이다. 이곳은 반대다. 물론 일제 때부터 중석광산이 개발되면서 인구가 몰려서 일수도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조창(漕倉)이 설치된 것으로 보아 물자가 풍부했다는 것이다.

이곳을 답사하며 중국 운남성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인도까지 이어지는 차마고도가 생각났다. 강원도는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동쪽 영동과 서쪽 영서로 나눈다. 두 지역은 생산물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그래도 서로 필요한 것이 있으므로 물물교류는 했을 것이다. 두 지역 간 교류가 이루어진 곳이 상동시장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느 지방 도시처럼 상동지역도 침체되었다. 이를 재생하기 위해 중석광업소를 재가동시키려고 하는 모양이다. 경쟁력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러지 말고 십승지로서의 특성과 한국의 차마고도와 같은 스토리를 발굴하는 것이 어떨까한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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