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레와 멍에, 그리고 재갈. “부부의 멍에는 벗을 수 있어도 아비라는 굴레는 풀 수 없다”고 하면, 부부 사이가 틀어져 헤어질 때 올지 몰라도 아비로서의 책무는 끝내 저버릴 수 없다는 말이겠다. 멍에는 소 목덜미 위에 얹는 거꾸로 된 V자형 굵은 나무토막으로, 이 멍에에 의지해 수레를 끌거나 쟁기를 맨다. 멍에는 또 소나 말 머리에 얼기설기 옭아 놓은 끈 굴레에 의지한다. 이 굴레 역시 그 앞에 얽어 맬 빌미 있어서, 소의 코청 뚫어 꿰는 둥그런 코뚜레나, 말의 혀 위를 가로질러 양 어금니 밖으로 빼 낸 재갈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재갈(코뚜레), 굴레, 멍에 순으로 구속의 고리와 끈은 이어진다.굴레는 재갈이나 코뚜레에 이어지는 한편, 목덜미에 얹힌 멍에와 묶인다. 게다가 사람이 손에 잡고 채서 다루려 마련한 줄 고삐까지 굴레에 달린다. 그러니 세 곳으로 연결된 굴레는 평생 벗을 수 없다. 재갈과 코뚜레 그리고 굴레는 벗을 수 없으나, 멍에는 수레와 쟁기 떼어낼 때 함께 벗겨 놓는다. 사랑의 멍에는 벗을 수 있으나, 아비의 굴레는 풀지 못한다. 부부간의 사랑을 멍에, 부자간의 정을 굴레라 함이 적절한지 모르지만.

한편 생각하면 멍에와 굴레를 삶에서 운운함은, 그 삶이 팍팍하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다. 물론 아내와 자식이 내게 재갈을 물렸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세상에서 지은 인연을 나의 숙명으로 알아 하나의 업(業)으로 표현하였을 뿐이다.

한자로 재갈을 銜(함), 재갈물림을 啣(함)이라 쓴다. 기휘는 꺼리어 싫어하거나 피함인데, 군왕이나 집안 어른 이름자 함부로 부르기 거북해 입에 올리지 않고 피하는 조심이다. 입에 재갈(銜)을 물은(啣) 듯 어르신 이름자를 조심스레 여쭙는다. 그래서 어른 이름의 높임말은 함자(銜字)이다. 제사장이 공물 올릴 때 입김 닿지 말라고 입술에 무는 종이를 함매(銜枚)라 한다. 한 장의 재갈이다. 한밤중 소리 죽이려 말굽에 싸거나 병사의 입에 물렸던 나무토막도 함매이다. 함(銜)은 처음에 다만 말 재갈이었으나, 함부로 부르면 안돼 삼갈 이름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이들 한자의 본래 의미는 여직 팔팔하게 살아있어, 재갈(銜)이나 그 재갈물림(啣)은 오늘날 명함이란 말에 남아있다.

네임카드를 일본은 명자(名刺), 중국은 명편(名片)이라고 각기 다르게 적는다. 그렇다면 이에 해당하는 명함(名銜, 名啣)은 남의 이름 높인 독특한 우리말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이 명함은 오늘날의 이력서나 인사기록카드 정도로 쓰였다. 평소 꾸준히 기록해 두었다, 어떤 자리에 사람 필요하게 되면 물망에 오른 이름에 그의 명함을 붙여 낙점할 때 참고자료로 삼았다.

살면서 누구나 다 명함 지녔었거나 지닐 필요를 느끼지는 않았을 터다. 또 번듯한 명함 지녔으되 바람직하지 않은 삶도 많다. 명함이 그의 능력에 대한 증명(license)인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유명짜한 회사일수록 명함이 직원의 몸값과 협상력을 실제 이상으로 부풀린다. 직장과 직책의 후광을 제 능력으로 아는 이는 세상에 많다.명함은 그래서 더러 순수하고 평등한 소통을 방해한다. 명함으로 하여 생각과 처신에 원치않은 괴리도 생긴다. 명함 없는 이들의 인간적 교류가 훨씬 뛰어남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사람을 사람 자체로 보고, 남에게 다가설 때 맨몸으로 부딪는 것이야말로 삶에서 지녀야 할 소중한 덕목이겠다. 명함 없어 진솔한 친구를 사귀고, 명함 없어 행동과 사유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재갈과 굴레가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라면 멍에는 그래도 가끔 내려놓을 수 있는 부담이다. 살펴보니 재갈은 애초에 남이 내게 물린 것이었으나, 또 함자라는 말에서처럼 스스로 삼가야 할 처세이기도 하다. 힘들게 짊어진 멍에도, 그것을 내 삶의 명예와 함께 놓고 봄직하다.

유호명 경동대학교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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