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성은 일반적으로 보편성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도덕적일 수 있고, 객관적 판단을 할 줄 아는 존재다. 인간의 이성에 근거한 가치 설정은 유한성에도 불구하고 자기 초월성이라는 인간의 가치에로 자신을 상승시킨다. 종교와 철학을 통해 인간은 부단히 완벽에 도달하려는 근사과정(process of approximation)위에 있다. 인간의 자기초월적 능력은 먼저 자기를 보고, 과거를 떠올릴 줄 알고, 미래를 예견하고, 먼 우주 밖을 내보며, 심지어 그 이상의 것까지 볼 수 있는 인간 개개인의 본질적 능력이다. 이런 자기 초월성은 상상력과 이성을 결합시켜 판단력과 도덕적 가능성을 낳는다.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는 인간의 자기 초월 능력의 우수성은 인간 정신의 능력이 시간과 장소와 문화를 초월하는 보편적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원의 특정하고 유한한 관점을 공유한다는데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낙관적 이해는 인류역사의 진보를 희망하게 했다. 적어도 1차 세계 대전이 있기 전에는 그랬다. 18세기와 19세기에 이르는 동안 인류는 과학과 기술을 발달시키면서 법과 정치, 나아가 사회 제도를 진보시켰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이 한껏 고양된 시대에 당연히 나타나야 할 변화와 발전의 향상이라고 모두가 믿었다.

하지만, 1차 대전 이후, 실존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대학 강단에 있던 학자들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제기 되었고, 동시에 종교계에서도 긍정하게 되었다. 20세기의 시작을 거대한 전쟁으로 막을 연 인류가 결과론적으로 마주하게 된 운명적 조우가 곧 ‘불안(anxiety)’이였다. 불안이란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닌, 삶의 문제로 다가왔고, 인간의 삶에 갑자기 밀려 온 불안감을 극복하려는 처절한 저항이 곧 모든 경계를 넘었다. 20세기는 그렇게 현존재의 근본적인 불안과 고독이라는 비극성과 함께 실존주의 철학과 만나게 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인류는 객관적이고 낙관주의적인 세계관에 대하여 절망했고, 국가나 사회에 의존하기 보다는 개인주의에 몰두하는 사회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간은 합리적인 것 보다 불안이나 절망 같은 문제들이 자주 등장하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이런 사회현상이 빚어낸 것이 실존주의다. 인간을 보는 방식으로서의 실존주의는 우선 인간의 본질과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그 자리에 주목하므로 인간론을 전개하는 본질적인 방식을 추구했다. 다른 하나는 시간과 공간 안의 곤경(predicament)에서 인간을 이해하고, 그것들 안에 존재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주어진 사이의 갈등을 보는 실존론적인 방식을 취했다. 종교적 관점으로 이런 현상을 이해하면, 인간의 본질적인 선과 실존적 소외 상태로 떨어지는 인간의 타락 사이의 갈등이다. 책임적 존재이자, 자기 초월적 존재인 인간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시대의 새로운 실존론적 자기 이해라는 패러다임으로 스스로를 관조하고 사유해야 하는 역사적,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므로 20세기를 극복 했던 것이다.

2019년도, 우리는 21세기의 가장 엄중한 시기를 지나는 것 같다. 자국중심주의, 경기침체, 청년 실업률 증가 등으로 우울한 새해를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인류는 ‘포스트 휴먼(Post-human)’, 또는 ‘초 인류(super-humans)’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현상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며, 절망을 희망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존재론적 미덕을 가지고 있다. 자기 초월성이란 거창한 것이 아닌, 자신의 욕망을 조금 낮추어 실존적 불안에서 희망으로 전환하는 사소한 행위에서 가차 없이 드러낼 수 있음에 있다. 인간만이 스스로에게 문제화 되지 않고 온전한 성숙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차종관 목사(세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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